2021년에 허리 디스크가 발병했다. 2-3번 디스크가 파열됐다. 한 달 정도는 침대에서 거의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심각했다. 고통도 극심했지만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공포가 더 심했다. 세월이 흘러서 일생 생활에 무리가 없는 수준까지 회복되었지만 후유증은 여전히 남아있다. 달리기 같은 운동은 하지 못하고 무리하면 무릎 주변으로 방사통이 있다. 병원에 가도 환자 취급을 받지 못하고 운동으로 극복해보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길을 잃은 느낌이다.

지루한 허리 디스크 재활기는 나중에 써보기로 하자. 설 연휴 며칠 전 주말이었다. 명절이면 이상하게 쓸쓸한 느낌이 들어 여기저기 전화하는 것이 내 습성인데 이번에는 잘 참았다. 술을 한 잔 하려고 마트에 가서 장을 봐왔다. 캐나다산 항정살, 조금 비싼 곡주 ‘화랑’, 청상추를 샀다. 고기를 구워서 상추에 싸 먹는 것을 좋아한다. 고기를 굽는데 외국산이라 그런지 냄새가 좀 났다. 국산으로 살 걸 후회하면서 후추를 잔뜩 뿌렸다. 상추에 편마늘을 놓고 고기를 얹고 쌈장을 올려서 한 입 가득 씹으니 먹을 만 했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 ‘화랑’ 과도 잘 어울렸다. 그렇게 쌈을 몇 개 먹다가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꺼내려고 의자에서 일어서는데 담이 걸릴 때처럼 헉 하고 뭔가 잘못된 느낌이 허리 쪽에서 강하게 왔다.

일단 의자에 앉아 안정하고 고기를 마저 먹었다. 원래는 1차로 고기를 먹고 소파에 앉아서 넷플릭스라도 보면서 맥주를 마셔려던 것이 계획이었는데 설거지도 간신히 했다. 아무래도 크게 잘못된 것 같아서 이를 닦고 침대에 누웠다. 길었던 허리 디스크 재활의 악몽이 떠올랐다. 걱정으로 밤새 잠을 자지 못했다. 화장실 가려고 일어서는 것도 어려웠다. 새벽 4시 경에 우선 집에 있던 이부프로펜을 한 알 먹었다. 병원에 가려면 통증이라도 줄여야 할 것 같았다. 5시가 넘에서 혼자는 무리일 것 같아서 동생네 부부에게 도움을 청했다. 마침 근처에 연 병원이 있어 등산 스틱에 의지해서 차를 타고 치료를 받으러 갔다. 다행이 어제 보다는 움직일 만 했다.

병원에서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다. 이전에도 몇 번 맞아봐서 익숙했지만 맞을 때마다 무섭다. 긴 바늘을 척추 신경 근처 병변 가까이 까지 찌르고 마취제와 스테로이드 약물을 주입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디스크 소견이 아니라 요추 염좌로 진단 받았고 4군데 정도 주사를 했는데 조금 찌릿했을 뿐 아프지는 않았다. 주사를 맞고 집에 왔는데 어제 보다는 훨씬 나았고 이틀 정도 지난 지금은 통증은 거의 없고 기존에 있던 무릎 주면 방사통만 여전히 남아있다.

덕분에 설에 집에 가지 못했다. 허리디스크 치료로 유명한 교수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추간판 탈출증이 생명에 심각한 위협에 되지 않기 때문에 연구가 활발하지 않았다. 최근 삶의 질에 관심이 높아지고 수명이 늘어나면서 퇴행성 질환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져서 이 병에 대한 연구가 많이 되고 있다. 통증은 탈출 된 수액에 신경에 닿을 때 발생하는 염증 때문이며 염증을 잘 관리하면서 탈출된 디스크가 아물도록 해주면 자연스럽게 낳는 다는 것이다. 요즘 병원에서도 탈출된 디스크를 무조건 제거하지 않고 신경 차단 주사 등 비수술적 처치를 한 후에도 차도가 없을 경우 수술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그 과정이 몹시 괴롭다. 이 통증은 겪어본 사람만 안다. 육체적 고통과 더불어 신체 능력의 상실이라는 공포 때문에 우울증을 겪는 사람도 많다.

이번에는 다행이 단순 요추염좌 정도인 것 같다. 한 달 정도 집안 구조를 변경하면서 무리를 했던 것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오랜 허리디스크 재활에서 길을 잃고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방향을 모색해봐야겠다.

MRI 사진

최초 진단시 촬영했던 MRI 사진, 2020.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