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IMF를 피해 도피성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2000년 졸업을 하자마자 다행히 취업을 했다. 첫 월급을 타서 장만한 것은 캠핑 장비였다. 남대문에 가서 침낭과 텐트, 코펠, 가스랜턴, 배낭 등을 샀다. 공돌이로서 용산 나진상가를 드나들며 용팔이 형님들에게 당했던 것과 비슷하게 남대문에서도 당했다.

등산이나 캠핑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 단독 동계 캠핑을 로망했던 나는 그들의 쉬운 먹이감이었을 것이다. 몇군데 용품점을 돌아보다가 포스가 있어 보이는 주인장이 손짓하는 가게로 들어갔다. 텐트를 보여 달라고 했더니 그늘막 텐트 같이 약해 빠진 제품을 보여주길래 눈을 부릅뜨고 나는 ‘눈 속에서’ 캠핑을 할 것이라고 하자 포스 있어 보이는 히말라야 세르파 풍의 긴 머리를 휘날리던 사장님은 눈을 반짝이며 ‘이것이 바로 정상 공격용 텐트’ 라면서 꽤 그럴싸해 보이는 텐트를 내왔다.

얼떨결에 좀 비싼 값에 구매했는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당연히 정상 공격용 따위는 아니었다. 다만 성능과 내구성은 꽤 좋아서 실제 동계 캠핑에서 여러 번 잘 썼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사용하고 있다.

어쨌든 동계 캠핑 장비를 들고 처음 ‘공격’ 하러 간 곳이 속리산이었다. 45L 배낭에 텐트, 침낭, 코펠, 술과 안주 따위를 챙겨서 고속버스를 탔다. 장비는 동계용이긴 했지만 계절은 늦가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체력이 약했지만 어렸으니까 45L 배낭을 매고 문장대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그리고 야영을 하기 위해서 캠핑장에 텐트를 설치했다. 처음 해보는 것이라 헤맸지만 어찌어찌 설치를 했고 코펠에 물을 끓여서 청주를 중탕해서 데웠고 뭔가 안주를 만들었던 것 같다.

부탄 가스등에 의지해서 술을 마시는데 적막하니 참 좋았다. 그래도 뭔가 허전해서 라디오를 켜고 주파수를 맞추는데 아마도 김광한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시청자와 전화 연결이 있었는데 그 분은 사연이 있어 밖에 나가질 못하고 집안에서만 생활한다고 했다. 그날도 그런 자신의 처지가 슬퍼서 음악을 신청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 곡이 Melanie Safka의 The Saddest Thing 이었다.

DJ가 음악도 너무 슬픈 곡을 신청한다며 다음에는 좀 밝은 곡을 신청해보라며 위로하는데 그분도 그러겠다고 했다. 그날의 달과 풀벌레 소리와 멜라니 사프카의 노래가 가끔 떠오른다.

모닥불

OISOO 모임 가을 소풍, 정선, 2008.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