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늘 마시고 있지만 느닷없이 언제든 또 마시고 싶은 법이다. 술집은 그것에 대비해야 한다. 좋은 술집이라 함은 그런 대비가 되어 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느닷없이 술이 마시고 싶은 순꾼이 들이닥쳤을 때 간판에 불이 켜져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당신이 그 술집의 단골이라고 생각해보자. 마침 오늘 실연을 당했는데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집에 들어가서 차가운 바닥에 몸을 뉘일 용기가 없을 때 당신은 그 술집을 찾아갈 것이다. 그러나 바람 불고 비까지 내리는데 그 술집 간판의 불이 꺼져있다면 어떻겠는가. 술집은 그런 책무가 있다. 이제껏 술을 마시면서 그러한 ‘책무’를 성실하게 지키는 술집이 딱 두 군데 있었다. 나는 그 술집 사장이 ‘4천만 땡겨달라’ 고 했어도 해줬을 것이다. 무협의 시대가 지나고 양아치의 시대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의리를 지키는 술집 하나 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술집의 간판은 나침반이자 등대다. 아무 때나 끄고 싶다고 끄지 말았으면 한다. 그 불빛 하나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