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직업이 있을 때의 일이다. 몇 해 전 우연한 기회에 뉴욕 출장을 갔다. 해외 법인의 현장 목소리를 듣고 영업 수지를 개선해보겠다는 야심찬 기획이 발표되자 개발 팀장들은 현업이 바쁘다며 개발자 차출에 미온적이었는데 딱히 별로 하는 일도 없이 보이던 내가 얼떨결에 추천되어 약 40 일간 팔자에도 없던 미국 출장을 가게 되었다. 사무실은 뉴저지에 위치해 있었는데 마침 그곳의 기술 책임자가 나와 동갑내기 친구였다. 그곳에서는 한국에서 굳이 사람들을 보낸 이유를 알지 못했고 나로서도 왜 굳이 머나먼 이곳까지 날아와야 했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누군가 저질러 놨으니 보고서는 나와야 한다는 것이 유일한 합의점이었다. 

나는 매일 9시에 출근해서 커피를 마시고 잡담을 하고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미팅에 참여해서 영혼 없는 회의를 하다가 6시 무렵 퇴근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같이 갔던 동료는 술을 마시지도 않고 관광에도 별 관심이 없었기에 나는 호텔 방에서 홀로 고독했다. 출장 기간 동안 읽으려고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챙겼으나 읽을 수록 우울해졌으므로 나는 할 수 없이 술을 마셨다. 렌터카를 몰고 시내로 나가면 한인 마트가 있었다. 술은 ‘Liquor Store’ 라는 곳에서만 따로 판매를 했는데 세상에 이런 천국이 없었다. 생전 처음 보는 수제 맥주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가격이 말도 안되게 저렴했다. 

서울에서 이미 나는 수제 맥주에 맛을 들인 터였는데 서울에서는 한 병 겨우 마실 수 있는 돈을 내면 이곳에서는 여섯 병 세트를 살 수 있었다. 눈이 뒤집힌 나는 렌터카 트렁크에 맥주를 가득 싣고는 호텔 냉장고에 쟁여 놓고 매일 밤 마셨다. 그렇게 술독에 빠져 지내다 귀국을 해서 친구들과 맥주를 마셨는데 맛이 영 이상했다. 여독이 풀리지 않아서 그런가 했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여전했다. 이미 수제 맥주에 맛을 들인 데다가  출장 중에 다양한 수제 맥주를 싼 값에 퍼 마시다 보니 이제는 더 이상 국산 맥주는 마실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설이 길었는데, 이것이 내가 수제맥주의 世界에 빠지게 된 전말이다. 수제 맥주란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手製 라는 말은 손으로 만들었다는 것인데 그러면 발로 만드는 맥주도 있다는 말인가. Craft Beer 를 번역한 말이긴 한데 나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냥 크래프트 맥주로 부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쨌든 크래프트 맥주에 대한 보다 복잡하고 길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이 술집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우선 위치부터 내 취향에 맞았다. 지금은 서울숲이라는 곳이 많이 알려지고 성수동의 돼지갈비 골목은 식사 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이 술집이 생길 무렵 이곳은 한적한 곳이었다. 뚝섬역이나 서울숲역에서 내려 10분정도 주택가의 좁은 골목을 걷다 보면 이곳에 도착한다. 가게 뒤편으로는 유명 연예인들이 산다는 고급 아파트가 보이지만 주변 풍경은 아직도 골목의 모양새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는, 아니 어떻게 이런 곳에 술집을, 그것도 수제 맥주 전문점을 냈을까, 하고 놀랐다. 골목을 좋아하는 나는 단박에 반했다. 서너 명이 앉을 수 있는 바에 앉아서 아무 생각 없이 맥주 잔을 기울이다 보면 산책하는 아저씨, 아줌마, 아가씨, 학생들이 탁 트인 폴딩도어 너머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가게로 흘러 들어온다. 주택가에 이렇게 녹아들어 있는 술집이 흔하지 않다.

주인장은 내 또래인데 이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해외 출장이 잦은 직업이라고 들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크래프트 맥주를 접했는지 각종 맥주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다. 10여종의 탭을 운영하고 있는데 크래머리 브루어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국내 브루어리의 맥주가 준비되어 있다. 맥주는 주인장의 취향에 맞게 무난하지만 이곳이 아니면 마실 수 없는 맥주들로 준비되어 있다.

음식도 다양한데 주인장은 늘 자신이 음식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다며 겸손해 하면서도 가스트로 펍을 표방하고 있을 만큼 자부심이 대단하다. 때로 그 자부심은 과장되어 보이기도 한다. 나는 그런 그가 무척 부럽다. 이제는 이미 한 가지 직업으로 평생을 살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직업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보통 40대라고 하면 어느 분야에서든 한참 전문성을 인정받을 나이다. 그런 나이에 과감하게 평탄한 길을 포기하고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인장이 만들어 내는 음식들은 솔직히 전문 셰프의 요리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의 열정 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과장된 자부심 혹은 오기가 없다면 어떻게 이런 한적한 주택가 골목에 10여개의 크래프트 맥주 탭을 운영할 수 있을까. 나는 그가 더 오바하길 바란다. 그래서 이 술집에 오래가길 바란다.

이 가게에 앉아 둘러보면 벽면에 다양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주인장이 이곳저곳 여행을 하면서 사들인 그림이나 사진이다. 술집을 갤러리처럼 운영하며 판매도 한다고 들었다. 주인장의 예술적 면모는 전시된 그림 말고도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어도 알 수 있다. 음향에 꽤 공을 들였고 선곡에도 무척 신경을 쓰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벽면 한 쪽을 허물고 장소를 약간 넓혔다.

아무 일 없는 주말, 서울숲을 잠시 걷다가 술 한잔 생각이 난다면 이곳으로 오시라. 서울숲에서 가져온 고요를 크게 흩뜨리지 않고 배도 불리고 정신도 취하고 싶다면.

2017.10

Canonet Q17 / Superia C200

탭하우스 숲

추신

탭하우스 숲에 이어 심야의 숲을 운영하시던 서정일님이 2023년 8월 9일 소천하셨습니다. 탭하우스 숲이 오픈하면서 부터 시작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서울에 살면서 자주 들렀고 경기도 광주로 이사를 가서도 자주 올라왔습니다. 성수동에 있는 회사에 취업을 하면서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고 퇴근길에 자주 들러 술을 마셨습니다. 서울 숲 시절의 마지막 날과 심야의 숲 처음 날도 함께 했는데 이런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습니다.

술집 사장과 술꾼 손님으로 시작했지만 잘 통했습니다. 동년배의 나이탓도 있지만 생각하는 것, 좋아하는 것, 술의 취향과 음악의 취향도 비슷했습니다. 영업을 위해서 맥스웰 방정식을 공부해서 풀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F 얻어 맞지 않으려고 그렇게 어렵게 공부했던 그것을 비전공자가 풀었다니 참 대단하단 생각을 했습니다.

소천하시기 일주일 전 쯤 가게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평일 오후라지만 너무 한가했습니다. 제가 나갈 때 까지 한 팀의 손님만 왔다 갔을 뿐입니다. 어렵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왔지만 그날도 역시 힘들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가게는 진즉에 내놨고 어느날 가게가 팔리면 크루즈를 탈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우스개 소리처럼 했지만 진심인 것 같았습니다. 크루즈 스탭으로 BAR 같은 곳에 일자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영어도 가능하고 나이 대가 많은 사람을 오히려 선호한다고 했습니다. 엉뚱했지만 저도 솔깃했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대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회사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까닭없이 우울하거나 그냥 술이 마시고 싶을 때는 혼자 자주 숲에 갔습니다. 쉬는 날 없이 언제나 늦게 까지 열려 있었으니까요. 그는 늘 유쾌하고 열정이 넘쳤습니다. 어려울 때도 여유를 잃지 않았습니다. 좋은 친구였습니다. 서정일님의 명복을 빕니다.

2023.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