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
Canonet Q17 / Superia C200
탭하우스 숲
추신
탭하우스 숲에 이어 심야의 숲을 운영하시던 서정일님이 2023년 8월 9일 소천하셨습니다. 탭하우스 숲이 오픈하면서 부터 시작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서울에 살면서 자주 들렀고 경기도 광주로 이사를 가서도 자주 올라왔습니다. 성수동에 있는 회사에 취업을 하면서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고 퇴근길에 자주 들러 술을 마셨습니다. 서울 숲 시절의 마지막 날과 심야의 숲 처음 날도 함께 했는데 이런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습니다.
술집 사장과 술꾼 손님으로 시작했지만 잘 통했습니다. 동년배의 나이탓도 있지만 생각하는 것, 좋아하는 것, 술의 취향과 음악의 취향도 비슷했습니다. 영업을 위해서 맥스웰 방정식을 공부해서 풀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F 얻어 맞지 않으려고 그렇게 어렵게 공부했던 그것을 비전공자가 풀었다니 참 대단하단 생각을 했습니다.
소천하시기 일주일 전 쯤 가게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평일 오후라지만 너무 한가했습니다. 제가 나갈 때 까지 한 팀의 손님만 왔다 갔을 뿐입니다. 어렵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왔지만 그날도 역시 힘들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가게는 진즉에 내놨고 어느날 가게가 팔리면 크루즈를 탈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우스개 소리처럼 했지만 진심인 것 같았습니다. 크루즈 스탭으로 BAR 같은 곳에 일자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영어도 가능하고 나이 대가 많은 사람을 오히려 선호한다고 했습니다. 엉뚱했지만 저도 솔깃했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대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회사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까닭없이 우울하거나 그냥 술이 마시고 싶을 때는 혼자 자주 숲에 갔습니다. 쉬는 날 없이 언제나 늦게 까지 열려 있었으니까요. 그는 늘 유쾌하고 열정이 넘쳤습니다. 어려울 때도 여유를 잃지 않았습니다. 좋은 친구였습니다. 서정일님의 명복을 빕니다.
2023.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