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소리도 없이 내립니다. 회사 창이 북쪽으로 나 있는데 삼각산 봉우리가 흐릿하게 보였다가 사라졌다 합니다. 마치 안개 핀 물가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드네요. 이렇게 비가 오면 어릴적 생각이 납니다. 그 근동의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낡은 기와집이었는데 마당을 건너가면 작은 골방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방을 유난히 좋아했습니다. 비가 오면 그 방에 틀어박혀 만화책을 봤습니다. 이불 푹 뒤집어 쓰고 라면에 스프 뿌려먹으면서 책을 읽고 있노라면 나른하면서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조그맣게 난 창문으로 빗줄기가 언뜻언뜻 비칠 뿐 나를 방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참 평화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별 소득도 없이 바쁘기만한 요즘에는 그 골방이 참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