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7
미륵산 등산을 위해서 정보를 좀 찾아봤더니 미래사 입구까지 가는 버스가 있는데 드물게 운행하는 것 같고 대신 일운마을까지 가서 올라가면 된다는 블로그를 발견했다. 아침에 오미자 꿀빵을 애인한테 택배로 부치고 버스를 갈아타려고 보니 마땅치 않다. 다시 검색을 해보니 용화사에서 올라가는 코스가 있고 용화사행 버스는 비교적 자주 있었다. 용화사에서 등산을 시작해서 살살 올라갔는데 마지막 정상 부근은 힘들었다. 미륵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은 장관이었다. 눈 앞에 거치는 것이 없고 섬과 바다가 햇살을 받으며 늘어서 있었다. 정상 부근에서 마주쳤던 학생한테 통영 사람이라고 물으니 그렇다고 해서 하산 코스를 물어 내려갔다. 이 때 그냥 다시 용화사쪽으로 내려갔어야 했는데 이왕 온 김에 다른 절도 보고 싶어 미래사쪽으로 내려갔다. 미래사를 구경하고 보니 돌아갈 교통편이 마땅치 않아서 택시를 불러서 숙소로 돌아왔다. 대충 씻고 어제 들렀던 술집에 가서 술을 마셨다. 이번에는 사장님과 다양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시청 공무원이자 브라운 에일을 (실상은 바네하임의 도담도담) 좋아하는 친구가 나를 ‘영성횟집’ 사장님으로 착각하는 촌극이 있었고 해병을 막 제대한 ‘아들을 동반한 아버지’가 들어와 가게를 좀 떠들썩 하게 하기도 했다. 알바를 하는 친구의 나이가 스물이란 것도 알았고 어쩐지 샤이하다고 했는데 어려서 접객에 미숙했던 것 같다. 친구는 여친과 헤어지는 절차를 밟으러 자정 무렵 퇴근했다. 사장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새벽 3시가 넘어서 마무리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12/28
어제의 과음으로 인해서 정오까지는 못 일어날 줄 알았는데 열시가 되니 어영부영 눈이 떠졌고 해장을 하기 위해서 서호시장으로 갔다. 시락국을 먹으러 나선 것이었는데 부일식당(복국) 옆에 있다는 시락국집을 찾고 보니 복국을 먹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게로 들어섰다. 열한시가 되어가는 가게는 한산했고 복국을 시키니 정갈한 반찬과 막썬 회 몇점에 뽀얀 국묵의 복국이 나왔다. 국물은 개운했고 담백했다. 쌀밥을 말아서 한 그릇을 먹고 나니 살짝 땀이 나면서 술이 깨는 듯 했다. 테이블에 이미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있었는데 모두 혼자였고 국밥 그릇 없애는 파란 소주가 한 병씩 놓여있었다. 새벽에 경매장에서 일을 마치고 아침 겸 반주를 했으리라. 오후에 어제 뵈었던 사장님이 반다찌를 예약해 놓았다고 연락이 왔다. 그 때까지 술이 안 깰 것 같아서 일단 커튼을 내리고 잠을 잤다. 세시쯤에 일어나서 일단은 동피랑이라도 좀 걸어보려고 옷을 챙겨 입고 나왔다. 우선 약속한 혜성 반다찌까지 걸어서 위치를 확인을 하고 시간이 남아서 동피랑을 대충 산책했다. 혜성 반다찌는 2인 기준 3만원이었는데 적당히 먹을 만큼 안주가 나온다. 우리는 어제 과음한 탓에 술을 맥주 세 병 밖에 못마셨는데 술을 더 마신다면 안주가 더 나왔을 것이다. 일단 쓸데 없는 보여주기식 안주가 나오지 않아서 좋았고 깔끔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다음에 일행과 같이 오면 다시 들러보고 싶다. 식사를 마치고 사장님에 당신은 맥덕이니까 통영에 왔으니 수제맥주 펍을 한번 가봐야 하지 않겠냐며 데려간 곳은 플레이볼이라는 펍이었다. 통영에 정착하려고 내려온 분이 얼마 전에 오픈한 술집이었다. 일곱가지 정도 탭을 가지고 있고 병맥주도 여러 종류를 구비하고 있었는데 대체로 독일 계열 맥주들이다. 국내 맥주 두 잔을 탭으로 마시고 나왔다.
12/29
오늘 아침은 어제 먹지 못한 시락국에 도전했다. 어제 일찌감치 잠을 잔 덕분에 새벽에 깨어 서호시장까지 걸어 갔다. 소개 받은 통영산장어시락국집을 찾아 들어갔다. 장어 서더리로 육수를 내는 모양이었다. 도착한 시간이 새벽 여섯시가 갓 넘은 시간이라 두 명의 손님이 있을 뿐 한가했다. 한 명은 소주를 일 병하고 내가 들어서자 계산을 하고 나갔다. 새벽 바다에 나갔다 오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한 명은 가게 주인과 친분이 있는 모양으로 손님 왔다, 거스름돈 내줘라 하며 새벽 시간이라 혼자 일하는 아줌마를 퉁명스럽게(혹은 츤데레 스럽게) 도와주었다. 7,000원 밥상 치고는 매우 훌륭했다. 조기 구이가 나왔는데 살이 부드럽고 맛있었다. 막 썬 회가 조금 나왔는데 이름은 모르겠지만 먹을 만 했다. 그 외 젓갈이며 김치며 모두 정갈하고 맛이 났다. 시락국은 생각보다는 된장을 엷게 푼 시래기 국이었다. 짙은 색의 된장국을 생각했는데 그것은 아니었다. 장어 육수 덕분인지 맛이 진하고 구수했다. 든든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잠을 자다가 정오가 되기 전에 일어났다. 박경리 기념관 가는 버스를 우여곡절 끝에 타기는 했는데 근처 정류장까지만 가서 나를 내려놓았다. 날씨가 마치 봄 같아서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면서 걸어 올라가는 맛이 좋았다. 기념관에서 산을 제법 올라가야 묘소가 나온다. 고즈넉했다. 생전 선생의 품성이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선생의 품성을 닮은 곳에 누워 계시는 것 같았다. 묘소는 통영 앞바다를 완만하게 내려다 보고 있다. 묘소 앞 벤치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혼자 있어도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오랫만에 느껴보는 평화였다.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기념관 앞 정류장에서 앉아서 소개 받은 숙이수산에 전화해서 대방어가 있냐고 물었으나 완판이 됐다고 해서 이런저런 회의 포장하러 가겠다고 연락해 놓았다. 도대체 버스가 언제 올지 모르는 이런 정류장에 앉아 있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버스를 타고 시내에서 내려 윤이상 기념관에 들러서 관람을 하고 숙이수산으로 갔다. 마침 대방어 한 접시 포장이 가능하다고 해서 값을 치르고 해저터널을 관통해서 관람하고 시장으로 돌아왔다. 포장한 회를 가지고 비엔토에 가서 나누어 먹을 생각이다. 일단 좀 씻고 쉬기로 했다. 잠시 누워서 쉬다가 방어회를 들고 비엔토로 갔다. 시청 공무원 청년은 사장님이 전화하니까 오긴 했는데 감기가 심하게 걸려서 인사만 하고 돌아갔다. 방어회를 즐기진 않았는데 제철에 잡는 것이라 그런지 맛이 무척 좋았다. 다양한 부위를 포장해주셔서 아삭하기도 하고 물렁하기도 하고 식감이 다채로왔고 풍미도 다양했다. 손님들이 하나 둘씩 들어왔다. 들어올 때 마다 회를 조금씩 나누었다.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었다. 늦은 시간에 마치 지미핸드릭스 같이 머리에 밴드를 한 (나중에 보니 수건이었다) 아저씨와 애인 혹은 부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가게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들어왔다. 역시 회를 나누어 드리려고 했는데 회는 별로 안 좋아해서 따뜻한 음식을 먹으려고 이 집에 들어왔다며 고사했다. 맥주를 좋아하는지 이런저런 맥주를 시키고 말을 섞다보니 여러가지를 알아냈는데 캠핑카를 몰고 거제에서 이쪽으로 여행을 하고 있고 울산에서 오래 살았으며 서울로 이주할 생각이고 부인 혹은 애인은 공부하는 사람 같고 남편 혹은 아저씨는 방사선 관련 엔지니어라는 것 등을 알아냈다. 일전에 왔던 해병대 부자와는 다르게 선을 넘지 않고 얘기가 부드러웠다. 아마도 추측이지만 결혼은 하지 않은 것 같고 애도 없지만 같이 사는 것 같았다. 캠핑카를 통영 문화원 비탈길에 세워두고 왔다며 나중에 잘 때 기울어진 바닥에서 자야 한다며 우스개 소리를 했다. 열이 오르자 다시 한번 회를 권하니 몇 점 먹어보고는 이렇게 맛있는 회는 처음이라며 좋아해서 몇점 더 나누어 드렸다. 답으로 맥주를 두어 병 얻어 마셨다. 사장님이 서비스를 준 맥주까지 얻어 마시고 새벽 1시쯤 돌아왔다.
12/30
아침으로 미리 점찍어둔 국밥집으로 갔다. 장수국밥이란 곳인데 동네 맛집으로 평이 좋았다. 소고기 국밥을 시켰는데 반찬도 맛있고 무엇보다 국밥의 맛이 좋았다. 든든하게 해장을 하고 동서울행 버스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