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 만화 ‘심야식당’ 을 너무 좋아한 이후로 ‘심야식당’ 같은 술집만 찾아다니는지도 모르겠다. 연남동 소점으로 검색해서 찾아갈 수 있는 이 작은 술집은 사실 은평구 일대에서 오래 살아온 내가 보기엔 차라리 모래내나 가좌동 혹은 수색역에서 더 접근하기 쉬워 보이는 곳이다. 하지만 주소는 엄연히 마포구 연남동이다. 홍대입구역 3번 출구를 나와서 소란스런 연트럴 파크를 지나 경의선 철길 공원을 하염없이 걷다보면 갑자기 소란이 멎고 모던함이 사라지고 타임슬립을 경험하듯 낡은 골목길을 만나게 되는데 불꺼진 조용한 주택가 그 곳에 이 작은 술집만이 오래된 수은등처럼 조용히 불을 켜고 있다.

소점은 아마도 작은 술집이라는 뜻이겠고 내가 연작으로 쓰고 있는 이 글에 가장 적합한 곳일 것 같다. 소점은 꼬치구이와 오코노미야키를 파는 선술집이다. L 자형 다찌가 전부라서 손님을 가득 채워봐야 대여섯 명이 앉으면 만석이다.  근처에 다른 술집도 마땅치 않으니 바람을 맞으면 쓸쓸히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다. 메뉴를 시킬 때마다 ‘감사합니다’ 를 복창하는 사장님은 젊고 풍채가 좋다. 꼬치를 구울 때 기름이 튀는 것을 막으려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유리창 너머로 꼬치가 구워지는 것을 구경하는 것 그리고 넒은 철판 위에서 각종 야채와 고기가 흰 연기를 뿜으며 튀겨지는 것을 구경하는 것은 작은 술집의 재미다.

내 생각에 꼬치구이는 혼자서 먹는 음식이다. 일단 양이 적고 대나무 꼬챙이에 꽂혀있는 고기나 야채들을 빼서 나누어 먹기도 곤란하다. 그래서 한 상 제대로 차려서 먹는 우리나라 음주 문화에는 어울리지 않는지 꼬치구이 집이 잘되는 곳을 잘 보지 못했다. 어쨌든 꼬치구이집에서는 혼술을 추천한다. 위스키 하이볼이나 맥주를 한 잔 시켜 놓고 좋아하는 꼬치를 하나씩 주문해서 먹으면 된다. 소점의 꼬치구이는 푸짐해서 좋다. 이곳의 꼬치는 큰 깍두기만하다.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은 여느 꼬치구이집에서 화가 난 적이 있다면 이곳에서는 반드시 만족할 것이다. 오코노미야끼 역시 푸짐하다. 둘이서 먹기에도 충분한 양이다. 혼술이 어렵다면 두 명이 와서 오코노미야끼를 시키자. 다만 세 명 이상은 내 생각에 민폐다. 더 큰 술집으로 가길 권한다.

주인장한테 들으니 인테리어 하는 일이 만만찮았다고 한다. 선반이나 에어컨 혹은 온풍기 등을 설치하면서 오래된 벽이 허물어질까 걱정했다고 한다. 벽면에는 이곳에서 파는 오코노미야끼에 대한 앙증맞은 카툰이 붙어 있는데 주인장의 풍채를 생각하면 좀 언발란스해서 웃긴다. 현금을 내면 할인해준다는 익살스런 문구에서 자영업의 고민이 느껴진다. 그는 아마도 동네 주민과 잘 소통하는 것 같다. 지나가는 동네 아저씨와 이야기하는 모습도 그렇고 술집의 소란 때문에 혹시나 주민들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어 달라는 부탁의 글도 붙어있다.

이곳의 위치는 서울 먹거리 상권 중에서 제일 HOT한 연남동의 이름을 가져다 붙였지만 사실 화려한 연남동 상권과는 거리가 멀다. 이곳은 차라리 강호에 이름을 떨치기 전 무림 고수의 은둔처에 가깝다. 사연은 모르겠지만 그는 아마도 비싼 연남동의 월세를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했기에 역설적으로 이런 완벽한 - 내가 생각하기에 - 장소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끊임없이 조용한 술집을 찾는 나는 기어코 이런 술집을 찾아냈지만 이런 곳에 술집을 낼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은 두어 시간에 걸쳐 광역 버스를 타고 혼잡한 지하철을 갈아타고 조용한 철길을 건너면서 사람들을 구경한 다음 마침내 조용한 술집에서 술 한잔 기울이고 도시를 건너는 마지막 버스를 타고 다시 시골로 돌아오는 내 소박한 낭만과는 달리 매우 처절했을 것이다. 

나는 이 술집이 오래가길 바란다. 그리고 혹시 그가 강호에 나가더라도 은둔 고수의 품격은 유지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QL17 / Xtra400 / 2018 연남동 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