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를 다녀오던 길이었던 것 같다. 아니면 카메라를 들고 어둔 골목을 헤대다 오던 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곳의 이름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산꼭대기에 있고, 열고 싶을 때 트위터에 공지를 하고, 늦은 밤에 오픈해서 새벽 4시까지 영업하며, 오뎅과 야키소바를 만들어 파는 심야 술집. 내가 무척 좋아할만한 요소를 갖춘 이곳을 선뜻 가보지 않았던 것은 접근성이 좋지도 않고 벼르고 갔다가 자리가 없으면 낭패란 생각 때문이었다.

이 술집의 운영 방침을 인터넷에서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다. 술이라는 것이 뜬금없이 마시고 싶은 날이 있게 마련이다. 눈은 내리고 모든 차편이 끊어졌거나, 퍼붓는 빗소리에 잠이 깼는데 다시 잠이 오지 않거나,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들이 그날 따라 전부 바쁘다거나, 이별을 했거나, 이럴 때 하필 시간이 이미 자정을 넘어가고 있다면 절망적이다. 하지만 그럴 때 다락방 속에 감추어 둔 나만의 보물처럼, 술 한잔 기울일 수 있는 술집이 있다면, 그것은 구원이다.

위치를 대략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하는 줄은 몰랐다. 꾸불꾸불한 길을 꽤 오랬동안 덜컹거리며 오르자 무슨 뜻인지는 알 수없는 일본풍의 주황색 등이 걸려 있는 작은 가게가 눈앞에 나타났다.

시간은 새벽 2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가게 안에는 주인장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손님이 많아서 멋적게 발길은 돌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은 기우였다. 그런데 주인장의 모습이 몹시 기괴했다. 기타 비슷한 것을 메고 브라운관 TV를 보며 신나게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새벽 2시에 산꼭대기 작은 술집에서 벌어지는 일치고는 너무도 생경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그것은 플레이스테이션용 ‘기타 히어로’라는 게임이었다.

주인장에게 게임을 방해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어색하게 자리에 앉았다. 한 쪽 벽면을 책으로 채웠는데 만화가 많아서 흥미로웠고, 소설 미야모토 무사시가 있어서 반가웠다. 그 외에는 성문기초영어 같은 책도 보이고 대체로 두서가 없었는데, 억지로 장서를 갖춘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있던 책을 옮겨놓은 것 같았다. 가게는 다섯평 남짓으로 작았는데 세로로 홀쭉한 공간을 칸막이로 두 개로 분리해서 쓰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안쪽에 주방이 있었는데 문을 열고 드나들게 되어 있는 구조였다.

안쪽 공간에 앉아서 건네주는 메뉴를 받아서 맥주와 오뎅을 주문했다. 주인장은 먼저 맥주를 내왔다. 그리고 주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앰프에 연결된 오디오 플러그를 건네주면서 듣고 싶은 음악이 있으면 들으라고 했다. 앰프는 하만 카돈 사운드 스틱. 손님 중 한 명이 음악을 플레이 하고 가게의 모두가 같이 듣는 이런 시스템은 마치 오래 전 쥬크 박스 시대로 돌아간 것 같아 무척 흥미로왔다. 나는 마침 스마트폰에 담겨있는 Derek and Dominos 의 Layla and Other Assorted Love Songs 앨범을 재생하고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셨다.

이 술집의 간판, 심야오뎅이 안주로 나오고 오뎅과 함께 맥주를 더 마셨다. 한 병을 다 비웠을 때쯤 주인장에게 합석을 권했다. 어짜피 주인장과 나 밖에 없었고 이런 재밌는 가게를 하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나는 주인장이 생각보다 젊어서 놀랐고 나이에 비해서 취향이 올드해서 또 놀랐다. 옛날 노래와 옛날 밴드를 좋아하는 취향이 비슷했고, 만화를 좋아하는 점이 같았다. 그는 미소년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검도를 전공했다. 베가본드라는 만화를 서로 좋아해서 소설 미야모토 무사시에 대해서 한동안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이 시대에 손편지 쓰기를 좋아해서 그와 관련된 일을 벌이고 있다고도 했다. 

지면을 통해서도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그는 꽃을 다루는 플로리스트다. 꽃집이었던 이 가게에서 술집을 열게 된 것은 불면증 때문이었단다. 그렇게 잠도 안오는 긴 밤에 심심파적으로 시작한 술집이 알음알음 몰려든 손님으로 북적이게 되자 너무 바빠졌는데, 그럴때면 가게를 잠시 닫고 손님이 뜸해지면 다시 여는 이해못할 일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손님들은 트위터 공지나 전화 확인을 하고 가게가 문을 열었는지 확인을 하고 나서야 술을 마시러 올 수 있었다니 이런 불친절한 술집이 또 있나 싶다.

이곳의 간판메뉴 심야오뎅은 약간 달달한 맛이 나는 일본풍의 오뎅탕인데 푸짐하고 맛이 좋다. 소주 안주로 제격인데 나는 소주를 마시지 못해 맥주와 함께 먹는다. 출출해서 야식이 생각난다면 야끼소바를 추천한다. 소스로 달달하게 볶은 소바에 계란 노른자를 살살 비벼서 먹으면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무언가 패가 안플리고 답답한 날이 계속된다면 새벽 2시에 무작정 부암동으로 달려보시라. 조금의 위안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심야오뎅에서.

Cannon QL17 / FUJICOLOR C200

부암동 심야오뎅,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