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달동네 이야기부터 하기로 하자. 달동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여러가지 있을 것이다. 좁다란 골목길, 하늘 끝까지 닿아 있을 것 같은 계단,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낡은 집들, 스레트 지붕, 연탄, 서울의 달 같은 드라마까지. 달동네의 어원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 단어를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이 단어가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도 잘 알고 있다. 아마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도 ‘달동네’ 라는 말을 싫어할 것이다. 그래서 내놓고 이 말을 쓰지 못하는 것이 나는 안타깝다. 마치 청소부라는 말의 의미와 어감을 나는 무척 좋아하지만, 어쩔 수 없이 환경미화원이라는, 좀더 ‘미화된’ 말을 쓸 수 밖에 없는 것과 같다. 쓸쓸한 일이다.

인천시 부평구 십정동에 그 ‘달동네’가 있다. 十井은 열 개의 우물이라는 뜻으로, 원래는 열우물이라고 불리던 것을 한문으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 이 마을은 두가지로 유명세를 탔다. 하나는 벽화이고, 또 하나는 영화다. 달동네마다 유행처럼 번진 벽화마을 조성 사업이 이곳에도 시행됐던 모양이고,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촬영지가 이 곳이었던 모양이다. 벽화마을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시각은 몇번 피력했기에 더 이상 쓰고 싶지 않다. 영화는 볼 생각이 없던 것을, ‘꽃미남’ 배우인 김수현의 팬 덕분에 억지로 보게 되었다. 영화는 그저 그랬지만 그 골목들은 내 눈길을 끌었다.

안그래도 인천에 있는 오래된 골목들에 대한 정보를 어디선가 보고서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영화 덕분에 인천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됐지만, 여러가지 일로 머리가 복잡해서 카메라는 먼지만 뒤집어 쓴 채, 주인의 외면을 받고 있었다. 카메라가 오랜만에 외출을 하게 된 것은 10월이 거의 끝나가던 어느 일요일 오후였다. 아침에 빨래를 해서 널고, 늦은 아침을 해 먹고 나니, 식곤증과 무기력증이 겹쳐왔다. 이전처럼 낮잠으로 하루를 소진해버릴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잠으로 보내버리기엔 짧은 가을 볕이 너무 아까웠다. 

오랜만에 Me Super를 꺼내서 쌓인 먼지를 털고, 필름실을 열어 먼지를 불어낸 다음, 필름을 장전했다. 렌즈를 두 개 정도 챙기고 삼각대까지 챙겼다가 그것은 도로 내려놓았다. 이날은 그냥 골목을 여유있게 걷고 싶었다. 낡은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최신 네비에 목적지를 입력했다. 자동차는 털털 거리면서 서부간선도로와 경인고속도로를 지나 상정 초등학교 앞에 도착했다. 한 시간 쯤 걸린 것 같다.

오후 두시에서 세시로 넘어가던 햇살은 그닥 예쁜 빛은 아니었지만, 한 여름 정오의 밋밋한 햇살보다는 확실히 훨씬 부드러운 색깔을 골목에 뿌리고 있었다. 낮잠 대신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마추친 것은 예의 그 벽화들이었다. 그 벽화들을 짐짓 외면하면서 나는 천천히 골목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십정동. 2013.10

Pentax Me Super SE/Tamron 24mm F2.5,A50.7/Superia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