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늘 그랬지만 최근 몇주간은 특별히 더, 때려치우는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 급기야는 출사표를 던지기 일보직전의 상황까지 갔는데 상황이 살짝 바뀌어 미수에 그쳤다. 하지만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은 여전하다. 그동안 나는 주변의 착한 사람들이 알면 깜짝 놀랄만큼 자주 회사를 때려치웠다. 그 과정에서 남의 말은 전혀 듣지 않았다. 몇몇 친구들과 고민을 나눠보긴 했지만 결국에는 처음 마음먹었던 방향을 바꾼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선택을 후회한 적도 있지만 인생이 짧다는 天理를 심득한 이후로 후회는 않기로 했다. 하지만 아쉬움은 희미하게 남아 가끔 꿈자리를 방해하기도 한다. 아직 공부가 짧은 탓이다.어쨌든 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섰는데 인생에도 발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에도 함부로 출사표를 던지려던 손을 다른 한손으로 간신히 부여잡고 치미는 火氣를 간신히 되돌렸다. 그리고 江湖의 친구들을 떠올렸다. 그래, 그들에게 물어보자.난생 처음 중대 결정에 강호제현의 조언을 참고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우선 연락처를 뒤적여 리스트를 만들기로 했다. 나는 아날로그 신봉자로서 현재 구식의 2G 슬라이드 폰을 쓰고 있다. 급하게 전화기를 바꾼 탓에 연락처가 단순히 가나다 순으로 들어있다. 전에는 카테고리 별로 분류해놨는데 이번에는 귀찮아서 모두 ‘미분류’에 몰아넣었다. 이번 폰으로 바꾸면서 연락처를 복사하지 않고 연락할 필요가 생겼거나 내게 전화왔던 번호만 저장 해두고 있다. 덕분에 목록이 많이 줄었다.단촐한 연락처 덕분에 리스트를 추려내는 작업은 간편했다. 그런데 작업을 시작하고 보니 정작 전화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황당한 결론에 봉착하고 말았다. 다음이 그나마 내가 조언을 구하려고 고려했던 분들의 실체이다.1. 기티리스트이자 가수. 하기 싫으면 그냥 때려치우는 것이 기본. 평생 음악만 하다가 밥집을 하려고 준비중.

  1. 단골 술집 사장님. 전직기자. 자신은 때려치웠으면서 나한테는 절때 때려치우지 말라고 말하는 이중인격자.
  2. 백수. 직장경험 1건. 처음이자 마지작 직장을 10년만에 때려치웠으나 아직 퇴직금 못받고 있다.
  3. 무술인. 특별한 직장없이 무술만 연마해오다 얼마 전에 도장을 열었다. 적자로  현재 투잡을 하고 있음.
  4. 개인사업자. 나에게 늘 직장 때려치우고 하고 싶은 것 하라고 말하지만 정작 당신은 수년째 때려치워야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계신 로맨디스트 형님. 다수의 사업 경험은 있으나 직장 경험은 거의 없음.
  5. 백수. 얼마전에 카레 요리집 겸 카페를 말아먹고 현재 백수 상태. 역시나 직장 경험이 없으며 현실 감각도 많이 떨어지는 누님.
  6. 백수. 그 요리집 하다가 같이 망했던 후배. 잘 다니던 직장을 내가 때려치우라고 했다고 진짜로 때려 치우고 아직까지 백수. 책임을 느낀다.
  7. 도반. 여태 道만 닦다가 정신 차리고 열심히 錢을 벌어보려고 하는 친구. 하지만 장사가 잘 안된다.
  8. 역학인. 전업투자가이자 역학인. 직장 경험 전무.
  9. 전업 화가.
  10. 직장인. 출근하기 싫으면 그냥 때려치운다.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나보다 더 많이 때려치워본 유일한 친구.
  11. 백수. 스스로 일용잡부라 칭하는 있는 친구. 여러일을 전전하다 현재 백수. 시나리오 작업중이라는데.
  12. 개인사업자. 동종업계에서 오랫동안 같이 일했던 친구. 현재 국수집 개업 두어달 만에 폐업 위기.
물어보기는 개뿔, 이번에도 그냥 내가 알아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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