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는 찔끔거리면 맛이 없다. 330ml 병맥주 정도는 웟샷으로 마시면 제일 좋다. 되도 않는 회사일로 스트레스를 받은 오후라면 원샷 한방으로 스트레스는 말끔히 날아간다. 원샷이 아니라면 두번으로 꺽어마시는 것도 괜찮다. 삼분할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지만 네번 이상은 곤란하다. 온도가 생명인 맥주가 이미 식어버렸다. 그대는 맥주 맛을 모르거나 아직 스트레스를 덜 받은 것이다.

소설가 김홍신씨가 어느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런 말을 했다. 구체적인 말은 생각이 안나지만 한 번 뿐인 人生, 주인으로 살라는 말이었다. 그래요, 저도 그게 늘 고민입니다.

얼마전 어떤 선배와 오랜만에 한잔 하는 날이었다. 약수동 언저리 수십년 전통을 내세운 순대국 집에서 머리고기를 시켜놓고 장광설과 고담준론이 난무했다. 머리고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싶었지만 소주는 못마시고 막걸리는 안받는 날이라 억지로 마신 찬 맥주가 화장실을 재촉했다. 낡은 건물들 사이로 미로처럼 난 어두운 길을 따라 비틀거리며 한참을 걸었지만 결국 나는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호남집이라지만 호남댁인지 의심스러운 아줌마는 천정에 달린 빨간 줄을 가리켰다. 나는 다시 고무 호스 속에 빨간 램프가 반짝이는 줄을 따라 비틀거리며 지저분한 길을 걸었다. 빨간 줄의 종착역에는 페인트로 대충 쓴 화장실이라는 글자와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 밑의 글씨를 보고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100원.”

황급히 주머니를 뒤지니 마침 오백원 짜리가 한 잎 있었다. 아직도 이런 곳이 있냐고 투덜거리며 작은 창문 앞 동전통에 오백원짜리를 놓고 백원짜리 네개를 거슬러 가려는 참이었다. 창문 안쪽에서 부스럭 인기척이 나더니 얼핏 울 할머니를 닮은 할머니가 이 볼일 있는 놈에게 원초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선문답과도 같았다. 

“뭐셔?”

잠에서 막 깬 듯한 할머니는 오백원짜리 동전을 확인하고서야 나를 보내주었다. 변기 앞에 서서 급하게 볼 일을 해결하려는데 영 오줌발이 시원찮았다. 찜찜한 기분으로 화장실을 나온 나는  주머니에 남아 있는 백원짜리 동던 네개를 던지듯 놓고 그곳을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다.

강구항에서 2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