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늘 혼자였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어둠이 내 속에 자리 잡고 부터는 내 안으로 파고드는 것이 남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좋았다. 진심으로 환하게 웃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기억에 없는 어린 아이 때나 그랬을까.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사진한장이 있는데 국민학교 졸업 사진이다. 무심한 꽃다발을 들고 어색하게 웃고 있는 사진. 살면서 무던히 노력했지만 약간의 쓸쓸함이 묻어나는 그 때의 어색한 미소로부터 나는 조금도 발전하지 못했다.
삶이 苦海라고 씌여있는 불경 한자락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피식 웃었다. 세상 사람 다 아는 것 아닌가.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말이 무섭게 다가온다. 삶이 고해라는 것이 현실로 자각될 때마다 우울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만성이 된 듯 하지만 늘 새로운 통증을 동반하면서 재발한다.
대충 살라고 인생 별거 없다고 위로하는 마음은 고맙지만 인생 정말 별거 아닐까. 한 때는 정말 인생 다 산것 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조금만 노력하면 生死도 벗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착각이었다. 착각에서 벗어나면서 치료된 줄 알았던 어둠이 다시 튀어나왔다. 극복했다고 착각했던 모든 것들 앞에서 나는 쓸쓸한 미소의 소년으로 다시 섰다. 대신 막연한 두려움은 옅어졌고 戰線은 뚜렸해졌다.
대충살면 죽도 밥도 안되고 해야만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이제 조금 알겠다. 그래서 지금의 우울은 고통스럽지만 오히려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