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 창으로 해가 진다. 동생이 약속있다며 나간다고 부산하다. 밥먹기 귀찮은데 그냥 굶을까? 그러고 있자니 갑자기 허기가 진다. 허전할 때는 이상하게 밀것이 당긴다. 냄비에 물을 올려놓고 냉장고를 열어본다. 귀찮은 생각이 들어 냉장고 문을 닫고 돌아서 창 밖을 본다. 아무래도 무얼 먹긴 해야할 듯해서 다시 문을 연다. 구석에 물러터진 갓김치가 보인다. 줄기를 가위로 대충 잘라 끓는 물에 집어 넣는다. 그리고 엄마가 만들어준 멸치가루를 반 숟가락 정도 떳다가 왠지 마음에 안들어 한 숟가락 듬뿍 떠서 털어 넣는다. 비릿한 냄새를 맡으며 냉동실 안을 뒤진다. 청양고추 한 개를 꺼내 썰어넣고 마늘 찧어논 놈을 역시 한 숟가락 듬뿍 넣는다. 끓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몇몇 얼굴이 떠오른다. 국물이 끓는 동안 밀가루를 반죽하기로 한다. 누런 우리 밀가루를 반죽 그릇에 먹을만큼 붓고 마침 잡히는 찻잔에 물을 따라 슬쩍 뿌린다. 손가락으로 살살 저어보니 대충 맞다. 한 참을 치대다 보니 아까 그놈들이 사뭇 끓는다. 반죽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가스불을 줄여 한 소끔 더 끓인다. 이럴 때 끽연가들은 담배를 한 대 피우려나? 거품을 걷어내고 간을 보는데 맛이 영 싱겁다. 다시 냉장고를 뒤져 총각 김치 국물을 두어 국자 투입한다. 간을 볼까하다 그냥 놔눈다. 반죽을 꺼내서 만져보니 감촉이 좋다. 고놈을 한참을 주물럭 거리다가 이리저리 늘려가며 툭툭 떼어 넣는다. 수제비는 얇팍해야 맛있다. 느긋하게 반죽을 다 떼어넣고 한 소끔 더 끓인 다음 불을 끈다. 국물을 떠서 맛을 보니 얼큰하면서도 시원한게 진미(眞味)다. 장사나 할까? 부엌 창에 비치던 해가 이제는 완전히 졌다. 방에 불켜고 밥이나 먹어야겠다.

<중미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