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업계에 종사한지 올 해로 10년을 채우게 된다. 참 불가사의한 일이다. 나 같이 불성실하고 게으른 인간이 10년간 같은 일을 하고 있다니 말이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나는 참 게으른 인간이다. 아침형 인간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아침 6:30에 출근하는 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억지로 하고 있을 뿐이다. 눈 떠질 때 일어나고 싶다. 근무는 점심시간 포함해서 9시간 남짓하고 있는데 이것도 힘들다. 일은 하루 반나절이면 충분하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야근하라고 아무리 눈총을 줘도 무시하고 주말에 출근하라해도 안하고 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일을 아예 안하고 싶다.

성실성에 대해서는 나는 늘 자괴감 내지는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왔다. 천성적으로 게으른 탓에 무엇을 해도 오래가는 법이 없었고 열심히 해보자고 해도 쉽게 흥미를 잃고는 했다. 취미만 해도 그렇다. 어느정도 맛을 보고 나면 열심히 몰두해서 한 단계 도약을 해야하는데 그 때가 되면 슬슬 재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보통 그 쯤에서 만족하고 만다. 산도 굳이 정상까지 올라가지 않는다. 20대 때는 산에 가면 정상에서 일출을 봐야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다니던 적도 있었지만 잠깐이었고 이제는 대충 7부 능선 쯤 오르다 내려온다. 책도 웬만한 책이 아니면 끝가지 읽지를 못한다.

불성실함은 환영받지 못한다. 하지만 성실해서 행복한가?

그런 의문이 언젠가 들었다. 그동안은 그저 맹목적으로 성실하고자 했다.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성실 혹은 근면이라는 덕목을 별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그렇게 살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늘 괴리가 있었다.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 성실이란 과연 무슨 의미란 말인가.

나에게 성실을 강요했던 사람들은 거의가 사회적 성공을 위한 성실을 말한 뿐이었다. 좋은 직장, 좋은 차, 좋은 집, 행복한 결혼, 좋은 아파트, 편한 노후, 윤택한 삶.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었다. 나는 그런 삶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이 정리되자 성실에 대한 압박에서 조금은 편해질 수 있었다.

그래도 현실은 여전히 현실이었다. 밥벌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지만 하루 이틀이지 10년을 하니 지겨워서 견딜 수가 없다. 더군다나 요즘 회사 상황이 한 몫을 거들었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라고 말하겠지만 배부르자고 사는 人生은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얼마전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든 만화책에서 이런 대화를 읽었다.

“고양이가 왜 위대한지 아니?”

”?”

“고양이는 평생 자기 하고 싶은대로만 하고 살잖아.”

“…”

이글을 읽고 한 동안 우울에 빠졌다. 고양이란 놈은 한번 뿐인 인생, 아니 묘생(苗生)을 아주 멋지게 살고 있구나. 인간이 볼 때는 버릇없고 제멋대로인 것이 고양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고양이는 죽을 때 흐뭇하게 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고양이처럼 살지 못하는 인간인 나에겐 술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결론을 낼까했는데 이것은 참 공자님한테도 미안하고 자라나는 새싹들에게도 미안한 일이다. 매우 비교육적인 결론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술을 사람으로 바꿔서 이해해줬으면 한다. 사실 내가 술을 마시는 것은 사람이 그립기 때문이다. 차를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다. 술이나 차나 다 정신을 몽롱하게 만든다. 날카로운 이성을 적당히 풀어주어 입대신 가슴으로 말하게 만든다. 그래서 술을 좋아하고 차를 마신다.

“외상은 어림없지”, 연신내

그날도 웬만해서는 1차에서 끝내고 집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걷고 싶어서 걸었다. 며칠째 이어진 한파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다다를 무렵 이놈의 한파 때문에 술이 다 깨버렸다. 그날은 멀쩡한 정신으로 집에 들어가서 자고 싶지가 않았다. 얼핏 들여다본 단골술집은 한산했다.

“오랫만에 왔습니다. 오늘은 한산하네요?”

“날이 추워서 년초부터 계속 한산해요.”

 

맥주를 몇병 째 비워도 손님은 나 밖에 없었다. 또 피맛골 얘기들 했다. 종로통에 없어진 노점들 얘기, 동대문에 자주가던 칼국수 집이 재개발로 헐린 사연, 광화문 광장의 억지춘향, 지겨웠던 직장 생활, 일만 하는 대한민국, 그리고 전근대적인 기업문화에 대해서 공분했다. 내 앞에 맥주 병이 쌓여갔고 사장님도 어느새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를 형님이라 부르는 알바 친구가 12시를 넘겨 퇴근했고 사장님이란 호칭은 형님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더 마셨다.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때는 더 이상 춥지는 않았다. 열오른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이 시원했다. 어쩐지 밝다고 생각했는데 간만에 구름이 걷혀 하늘이 맑았다 . 아직도 떠있을까?  취해서인지 계절이 지난 탓인지 그 별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실망해서 고개를 돌렸는데 그 쪽 하늘 가운데서 말갛게 씻긴 오리온이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