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은 어림없지”, 연신내
그날도 웬만해서는 1차에서 끝내고 집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걷고 싶어서 걸었다. 며칠째 이어진 한파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다다를 무렵 이놈의 한파 때문에 술이 다 깨버렸다. 그날은 멀쩡한 정신으로 집에 들어가서 자고 싶지가 않았다. 얼핏 들여다본 단골술집은 한산했다.
“오랫만에 왔습니다. 오늘은 한산하네요?”
“날이 추워서 년초부터 계속 한산해요.”
맥주를 몇병 째 비워도 손님은 나 밖에 없었다. 또 피맛골 얘기들 했다. 종로통에 없어진 노점들 얘기, 동대문에 자주가던 칼국수 집이 재개발로 헐린 사연, 광화문 광장의 억지춘향, 지겨웠던 직장 생활, 일만 하는 대한민국, 그리고 전근대적인 기업문화에 대해서 공분했다. 내 앞에 맥주 병이 쌓여갔고 사장님도 어느새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를 형님이라 부르는 알바 친구가 12시를 넘겨 퇴근했고 사장님이란 호칭은 형님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더 마셨다.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때는 더 이상 춥지는 않았다. 열오른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이 시원했다. 어쩐지 밝다고 생각했는데 간만에 구름이 걷혀 하늘이 맑았다 . 아직도 떠있을까? 취해서인지 계절이 지난 탓인지 그 별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실망해서 고개를 돌렸는데 그 쪽 하늘 가운데서 말갛게 씻긴 오리온이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