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동네에서 마실 만한 술집과 괜찮은 중국집을 찾는 일이다. 요즘은 짜장면, 짬뽕 맛있게 하는 집이 드물다. 내가 입맛이 까다로워진 것일까 생각해봤지만 그것보다는 오랜 음식점 순례 경력에서 음식 마다 최고 맛집들이 생겨가게 되고 나머지들은 그저 그런 곳으로 치부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좋은 술집은 더욱 어렵다. 나이가 들다보니 혼자 아무 때나 들러서 한 잔 부담없이 마실 수 있는 술집이 많지 않다. 물론 내가 술집을 고르는 기준이 많이 까다로운 점이 한 몫 할 것이다. 코로나를 지나면서 집에서 마시는 일이 많아졌지만 어쨌든 하루라도 마시지 않는 날이 없는 알중으로서는 집 밖의 술집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광진구에 이사와서 중국집 찾는 것은 일단 실패했다. 냉동 짜장면보다 맛있는 집 찾기 어려워서 - 이후에 생기긴 했다 - 포기했다. 술집도 찾지 못했다. 일단 나는 혼자 마시고, 소주를 마시지 않고, 크래프트 맥주를 주로 마시기 때문에 이것 만으로도 대부분의 술집들이 필터링 되었다. 그렇게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길로 무의미한 출퇴근을 반복하다가 하나의 간판이 눈에 띄었다. 지금은 자리도 옮겼고 내 기억력도 좋지를 못하기 때문에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인상적인 노란 차양과 노란 바탕의 배너는 뚜렷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을 베이스로 한 여러 칵테일이 배너를 대부분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흔치 않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이곳을 방문한 것은 내가 그 노랑 차양을 발견한지 한참이 지난 후 였다. 독특한 외관과 진 위주 칵테일 메뉴 때문에 흥미가 있어 가보려고 했지만 닫혀 있는 날이 많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카페를 겸하고 있어서 언제 커피가 끝나고 술이 시작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여러 번의 실패 이후에 마침내 가게에 들어섰을 때 기억이 난다. 가게가 넓지 않았다. 바의 자리가 두 세석 정도로 많지 않았고 테이블이 두 개 쯤 있었던 것 같다. 테이블은 만석이라 바에 자리를 잡았는데 인상이 좋은 바텐터는 마침 커피와 함께 몇가지 메뉴를 준비하느라 바빴는지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고는 능숙한 솜씨로 카페 손님 메뉴를 만들어 주고는 비로소 나의 주문을 받았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런 저런 위스키를 마시고 진 베이이스의 칵테일을 마셨고 아마도 취해서 어째서 진을 특화해서 팔고 있는지, 장사는 잘되는지, 언제부터 열었는지 귀찮에 물어봤던 것 같다.

나는 진을 꽤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진토닉으로 처음 진을 접했다. 은평구 연신내에 살 적에 집 앞 3분 거리에 단골 술집이 있었다. 퇴근 길에 그곳에 들러서 하이네켄이나 호가든 따위를 몇 명 마시면 꼭 진토닉을 주문했다. 한 잔만 마시자는 생각은 늘 두 세잔으로 바뀌었고 생각보다 취하는 칵테일인 덕분에 매우 취해서 집으로 기어들어가곤 했다. 이후 진에 관심이 생겨 이런저런 제품을 구매해서 마셔 보고 일본 여행에 가서는 진 전문 바를 찾아 가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진이 좀 부담이 되었다. 저렴한 가격에 높은 도수 덕분에 알중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인식했다고 할까. 레이먼트 카버가 평생 알콜 중독과 싸웠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는 수 없이 금주를 했고 수 없이 실패했다. 그런 그가 ‘금주’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맥주까지는 아예 술로 간주하지 않았으며 진을 마셔야 비로소 음주로 인정했다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중세에 노동 착취의 수단으로 임금 대신 진을 지급했다는 기록도 있다고 들었다. 말이 옆길로 많이 샜다.

가게가 좁았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였는지 확장 이전 한다는 애기를 들었는데 한 달 정도 가게가 닫혔고 새로운 가게로 몇 달 후에나 가게 된 것 같다. 일주일 중에 금요일과 토요일만 바를 운영하기 때문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았다. 술꾼 입장에서는 다행인가도 싶은데 그래도 며칠 더 운영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새로운 가게로 다니게 되면서 주인장과 좀 더 얘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비슷한 구석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술의 취향이나 공학적 취미라든지 여행 패턴 같은 것들인데 물론 바턴더로서 손님의 대화에 공감해준 것일 수도 있지만 좋아하는 세계가 비슷한 것은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 바텐더로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출중하다. 나늘 늘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는 서너 잔을 마신다.

바 몬스터레빗의 메뉴에는 시그니처 칵테일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처음에는 메뉴에 있는 맥주나 싱글 몰트 혹은 칵테일을 주문해서 마셨는데 이제는 그날 컨디션에 따라서 적당히 주문해서 마신다. 이를테면 피트 위스키 하이볼이 마시고 싶은데 오늘은 좀 달고 청량감이 있게 마시고 싶다고 하면 이런저런 제조 프로세스를 설명하면서 만들어 주는데 대체로 마음에 든다. 요즘 하이볼에 대세인데 이곳만큼 공들여서 다양한 하이볼을 마셔볼 수 있는 곳이 서울에 많지 않다. 칵테일에 들어가는 부재료도 만들어 쓴다. 가격은 서울 도심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바의 홍보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고 SNS 홍보도 딱히 하는 것 같지 않다. 손님 입장에서는 지금의 분위기가 좋은데, 글쎄 유명해지만 어쩌나?

2024.2

Canonet Q17 / Fuji XTRA 400

바 몬스터레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