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라는 캔바스의 배경색은 우울이었다. 나의 Mood는 늘 Blue였다. 그렇게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약에 취해서 멀쩡한 사람 행세를 할 뿐이었다. 약이란 것은 책이 될 때도 있었고 음악이 될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술이었다. 공돌이 개발자 용어로 말해보자면 나의 bug는 우울이었고 그것이 default status 였으며 유일한 debugging method는 booze 였다.

나의 인간 관계는 매우 좁지만 얼핏 엿보게 되는 그들의 사정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울과 위장된 평화의 상태가 반복되는 것이다. 우울의 상태에서는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힘들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그것을 회피하고 위장된 평화의 상태에서 사람들은 위태롭게 버티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평형 상태는 쉽게 깨지게 마련이고 사람들은 자주 무너진다.

얘기가 쓸데없이 진지해졌다. 평형 상태가 또 깨졌고 맥주 한 잔을 마시지만 소용이 없어서 음악을 듣는다. 이럴 때 듣는 음악이 여러가지가 있지만 오늘은 밥 말리를 골랐다. 내가 아는 거의 유일한 레게 뮤지션이다. 그가 죽기 직전에 만들었다는 Redemption Song 은 늘 나의 플레이 리스트에 올라와 있다. 레게라는 음악이 신기한 것이 유쾌한 리름 속에 우울이 숨어있다는 것인데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내가 듣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어짜피 예술은 소비하는 자의 몫 아니겠는가.

여하튼, 나는 우울할 때 자주 밥 말리를 듣는다. 취해서 LP 바의 바 - 좀 웃기군 - 에 앉아 있을 때 그의 음악을 신청해서 듣는다. 당장 속초나 동해로 도망가고 싶은 출근 지하철에서도 듣는다.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그놈의 우울을 나는 설거지를 하면서 앰프의 볼륨을 최대한, 그러나 아래 위 옆 집에 민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올리고, 빨간 고무 장갑을 끼고 뜨거운 물을 접시며 유리컵이며 수저에 뿌려가며,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