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경부 터미널은 낡았다. 보수 공사가 몇 년 째 지체되고 있는 것 같았다. 만남과 헤어짐이 오랫동안 퇴적되어 온 탓에 터미널은 반가우면서도 서글픈 장소다. 그래서 터미널에서는 조금 취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여행자는 우동 한 그릇과 맥주 한 캔으로 오랫동안 퇴적된 향수를 달래고 버스에 올랐다. 금요일 오후 4:00 경에 서울에서 통영으로 출발하는 우등 고속 버스는 의외로 거의 만석이었다.
한 두 방울 떨어지던 비는 버스가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거세어 졌다. 해는 아직 남아 있었지만 비구름 탓에 버스 안은 동굴처럼 어두웠다. 나는 소설책을 들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가을비가 검푸른 배경의 유리창에 우울한 추상화를 그리는 고속 버스 안에서 나는 노란 독서등에 의지해서 꿈을 꾸듯이 책을 읽었다. 버스는 예상 도착 시간을 한 시간이나 넘겨서 통영 터미널에 도착했다.
비는 이제 그칠지 말지를 고민 하는 것처럼 단속적으로 통영 터미널의 시멘트 바닥을 때리고 있었다. 나는 신고식 하듯 터미널의 모습을 한 컷 카메라에 담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 나왔다. 터미널에 오래 머물면 우울해진다. 밖으로 나오니 비로소 배가 고파졌다. 허름한 돼지국밥 집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대개 터미널 근처 식당은 품질이 형편 없게 마련이지만 고속 버스 기사들이 심심찮게 들어오는 것으로 봐서 괜찮은 식당인 듯 했다. 국밥은 희뿌연 국물에 돼지고기가 엑스트라처럼 들어있는 무성의한 서울의 국밥과는 달리 푸짐하고 맛이 좋았다.
금요일 밤의 게스트하우스는 한가했다. 혼자 여행하면서 가장 큰 문제는 숙박이다. 화장 진한 접대부 같은 모양새의 요즘 모텔에서 자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 일이다. 그래서 시내에서 조금 떨어졌지만 조용한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게스트하우스에 9시가 넘어 도착하니 대학 동창이라는 남녀 커플과 백수 기념 여행 중인 라이더 한 명 그리고 담양에서 왔다는 중년의 여인이 1층의 카페에서 간단한 안주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배정 받은 방에 짐을 던져놓고 일행에 합류해서 맥주 두 캔을 마셨다. 낯선 여행지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지만 그날 대화의 주제가 크게 흥미를 끌지 못했다. 나는 인사를 하고 방에 들어와 샤워를 했다. 수압이 좋고 뜨거운 물이 잘 나오는 욕실은 깨끗해서 마음에 들었다. 그날은 그렇게 침대에 기대서 소설을 읽다가 잠들었다.
다음날도 여전히 흐렸지만 다행이 비는 그쳤다. 나는 동피랑을 먼저 가기로 했다. 골목길은 석양 무렵이 가장 아름답지만 하루 일정에서 그 시간까지 기다리며 할 일이 마땅히 없었다. 게스트하우스의 셔틀버스가 나를 강구안까지 데려다 주었다. 바다가 뭍까지 쑤욱 밀고 들어와 강구안이란 포구를 만들었다. 역사 이전에 일어난 일이다. 삼도수군 통제영이 통영으로 옮겨 오면서 강구안 주변에 시장이 섰고 그것이 현재의 중앙시장이다. 중앙시장에서 오른편 언덕을 따라 동피랑이 있는데 강구안이 바라다 보이는 언덕이란 뜻이다. 서편에는 비슷한 서피랑이 있다.
대체로 포구에는 동피랑과 같은 포구 마을이 있기 마련이다. 포구가 있고 물고기를 사고 파는 어시장이 있으며 그것을 굽어보는 언덕에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 나는 몇 해 전에 묵호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는 논골길로 불리는 골목이 있다. 그 마을에도 벽화가 그려져 있다.
동피랑의 옛집들은 2006년 통영시가 강구안 뒤편의 낡은 주택지를 재개발 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것을 안타깝게 여긴 주민들과 ‘푸른통영21’이란 협의회가 통영시를 설득해서 재개발을 막았다. 마을에서는 공모전을 열어서 담벼락에 벽화를 그렸다. 주민들은 협동조합을 결성해서 ‘점방’도 내고 ‘구판장’도 열었다. 수입은 마을 운영에 쓰인다. 드라마를 찍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동피랑은 금새 유명해졌다. 그러나 소음 등의 문제로 떠난 사람도 있고 그 곳을 외지인이 사서 카페를 열기도 하고 감사 결과 운영 미숙이 드러나기도 하는 등, 갈등도 있다고 한다.
개발이란 명목으로 벌어지는 일들은 일부의 배만 불리고 그곳의 사람들은 피폐하게 만드는 폭력적인 행위일 경우가 많다. 아름다운 벽화들 사이로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동피랑의 앞날을 생각해 보다가 그만 우울해졌다. 부디 마을 주민의 자발적 노력으로 만들어진 마을인 만큼 좋은 방향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나는 골목을 두 바퀴 정도 돌고 나서 시장으로 내려왔다. 완만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포구에는 고기잡이 배들이 한가롭게 정박해 있고 이따금 갈매기 끼룩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다에서 돌아오는 배도 보였다. 막 들어온 배에서 내리는 물건을 흥정하는 떠들썩한 소리, 바다 바람에 널어놓은 생선이 풍기는 쿰쿰한 냄새와 관광 버스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알록달록한 옷차림, 그리고 날이 바짝 선 회칼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루는 좌판 아낙의 생선 다듬는 소리가 뒤섞인 포구는, 바구니에 담겨 연신 물을 튀겨내는 횟감들처럼 활기찼다.
나 같은 홀로 여행자는 먹거리 풍성한 여행지에서 언제나 막막하다. 유명하다는 통영의 다찌를 혼자 갈 수는 없고 포구에서 간단히 생선회를 뜨려고 해도 혼자 먹기에는 양이 많다. 점심 때가 가까워 배가 고파진 나는 고민 끝에 멍게 비빔밥을 먹었다. 그나마 혼자 먹을 수 있는 밥이었다. 만원 짜리 멍게 비빔밥에는 복지리가 국물로 나오고 젓갈 몇 가지와, 생굴, 미역 무침 등이 따라 나왔는데 몹시 만족스러운 밥상이었다.
배부른 여행자는 습관적으로 술이 생각났다. 낭만적으로 상상하면 포구 앞 선술집에서 홍어찜 따위를 시켜 놓고 홀로 여행 온 처자와 눈이 맞아 막걸리를 마시는 것이지만 그런 곳과 인연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나는 소화도 시킬 켬 포구 뒤편의 골목을 걸었다. 곳곳에 백석의 시가 걸려 있는데 그가 통영과 무슨 인연이 있을까 싶어 갸우뚱 거리며, ‘보나 마나 여자 문제 아닐까’ 생각을 했는데 돌아와 알고 보니 정말로 愛情之事였다. 백석이 여러 여자의 애간장을 녹였지만 통영의 ‘난’ 이란 여인에게는 크게 상처를 입었는데 그래서 나온 시 가운데 한편이 바로 <통영> 이라고 역시 통영에 잠시 머물고 있는 어떤 시인이 신문에 연재한 글을 찾을 수 있었다.통영>
그렇게 골목을 걷다가 간판에 ‘Ale 맥주’가 쓰여 있는 카페 겸 바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시골에도 Ale 맥주를 파는 곳이 있다니. 여기서 또 다른 우연이 시작된다. 빨간 벽돌이 인상적인 가게 안은 세련된 인테리어에 적합한 음향 시설을 갖추었고 좋은 커피 향을 풍겼다. 출입문 왼편의 테이블에는 막 떠난 사람들이 마셨던 커피잔이 놓여 있었고 주인장이 서 있는 작은 바에는 네 명의 손님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무심히 쳐다보았는데 그 중에 한 명이 바로 백석의 시가 왜 통영에 있는지 말해 준 시인이었다. 십여 년 전에 나는 땅끝 해남에서도 배를 타고 더 들어가야 하는 작은 섬에서 하루를 묵은 적이 있었다. 그 섬과 민박은 나에게 의미가 크다. 당시 한계레 신문에 섬 이야기를 연재하던 시인이 운영하던 그 민박에서, 나는 처음 여자를 안아 봤다.
당연히 나를 기억할 리가 없는 시인에게 인사를 하고 혼자 여행 온 사정을 이야기 하고 시인의 근황을 묻다가 그는 볼 일이 있는지 일행과 함께 카페를 떠났다. 나는 맥주를 한 병 더 주문하고 추억을 반추하면서 천천히 술을 마셨다. 그 때까지 혼자 통영을 여행하면서 쓸쓸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는데 뜻밖의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니 가슴 한 구석이 뻐근했다. 그런데 거기서 다시 우연이 일어났다.
서가에 진열되어 있는 책을 꺼내 읽으면서 맥주를 마시는데 카페에 전화벨이 울렸다. 그런데 뜻밖에 전화를 받은 주인이 나에게 다가와 ‘시인이 연락처를 알려 주며 혼자 맥주 마시는 손님을 찾더라’는 것이었다. 시인은 한 다찌집 전화번호를 알려주면서 별 일이 없으면 저녁에 한 잔 하자고 했다.
통영의 다찌에는 따로 메뉴가 없다. 한 명당 적당한 가격을 내면 제철의 해산물을 알아서 올려 주는 것이 이곳의 방식이다. 특히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통영에는 맛있는 해산물이 많이 난다고 했다. 광어나 우럭 밖에 모르는 나에게는 신세계나 다름 없었다. 맛보기로 나온 자연산 광어회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생선과 어패류가 연신 올라왔다. 나는 주량을 이미 초과했음에도 신선한 안주의 힘을 빌어 무모한 음주를 이어 갔다.
술이 약한 일행을 먼저 보내고 우리는 자리를 옮겨 그곳에 있던 시인의 후배와 셋이서 술을 마셨다. 오래 전 민박집에서 처음 만난 후 그의 소식은 신문 지상이나 책을 통해서 드문드문 접하고 있었다. 시인은 통영에서 잠시 머물 뿐 주변 섬을 떠돌며 기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섬을 떠돌고 있고 나는 도시를 떠돌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와의 대화는 격의 없이 편했다. 시인에게는 여느 얼치기 예술가에서 보이는 무례함이 없었고 현학적인 허세가 없어서 오히려 詩人다웠다. 그토록 조바심 내던 나의 가을 여행은 이렇게 끝났다.
통영, 2015.11
Pentax ME Super SE/K24 2.8, 50.7/Agfa Vista 400, FUJI C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