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에 심야식당이라는, 일본의 새내기 중년 작가가 쓴, 어쩌면 평범한 만화가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내가 굳이 새내기 일본 작가라고 쓴 이유는 그가 실제로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 데뷔를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나이까지 오타쿠의 꿈을 버리지 않고 결국 만화가로 성공한 그가 몹시 부러웠기 때문이다. 이 만화는 심야에 문을 열어서 새벽까지 영업을 하는 재밌는 운영 방식의 식당을 소재로 하여, 그 식당에 드나드는 손님들의 다양한 사연을 담담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이 만화는 아베 야로가 쓴 ‘심야식당’ 이다.

내가 이 조그만 식당을 알게된 것이 바로 그 만화 때문이었다. 혼잡한 지하철에 구겨지듯 몸을 싣고 출근을 해서 하루 종일 원치 않은 일을 하고 역시 만원 지하철에서 이리저리 부딪혀 가며 퇴근 하는 일상에서, 하루 쯤은 조용히 앉아서 한 잔 기울이고 싶은 날이 있는 법인데, 이 만화는 바로 그런 사람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것이다. 이 만화를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진 드라마에서 흘러나오는 바로 이 대사를 보자.

“하루가 끝나고 귀가길를 서두르는 사람들. 하지만 어딘가 허전한 기분이 들어 다른 곳에 들르고 싶은 밤도 있다.”

이 식당은 간판이 없다. 대신 손글씨로 ‘누하우동’ 이라는 갈겨 쓴 종이 조각이, 술 한잔 걸치고 무심히 바라본 문 한 켠에 이정표마냥 붙어 있을 뿐이다. 일본 말로 ‘다찌’라고 불리는, 네 명 정도가 간신히 어깨를 붙이고 앉을 수 있는 작은 바가 주인장을 마주보게 끔 설치되어 있고, 그 뒤로 두 개쯤의 테이블이 놓여있다. 작은 방안에 역시 두  세개의 테이블이 있는 듯 하지만 나는 들어가 본 적이 없어서 잘모른다. 나는 다찌를 좋아해서 혼자 갈 때나 친구와 갈 때나 늘 그 곳에 앉았다. 얼핏 들여다본 방 안에는 주인장의 취미를 반영해서 ‘비틀즈 최후의 만찬’ 그림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실제로 이 식당은 만화 심야식당과 종종 비교되어 여러곳에 기사화 되어 나왔던 모양이다. 내가봐도 비슷한 점이 많다. 우선 무뚝뚝하다 못해서 쉬크한 주인장의 캐릭터 - 만화에서는 마스터로 불린다 - 는 만화에서 따온 것 처럼 빼다 박았는데, 소심한 손님이라면 군더더기 없는 주인장의 응대에 상처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외모도 만화의 ‘마스터’와 흡사하다.

다음으로는 새벽이 올 때까지 술집이 열려있다는 것이 같은 점인데, 술꾼들로서는 한참 술마시다 가게 닫을 시간이라고 쫒겨나는 것 만큼 씁쓸한 것이 없고, 오랜만에 그곳에서의 한 잔이 생각나서 먼 길을 왔는데 굳게 닫힌 가게 문 앞으로 찬 바람만 휘잉 불고 있는 것처럼 허무한 것도 없기 마련인데, 누하우동의 불은 손님이 있는 한 꺼지지 않는다. 새벽 늦게 까지 영업한다는 것이 이 식당이 서울의 심야식당으로 이름을 나게 만든 일등공신임은 말할 것도 없다. 마지막으로 좁은 가게인 탓에 손님들끼리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밖에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는 점이 흡사하다. 술이 조금 오르면 마치 음주라는 범죄의 공범들처럼 묘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주고 받게 된다.

이 식당이 제일 마음에 드는 점은 혼자서 조용히 술을 마셔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작은 사시미 한 접시를 안주 삼아서 정종 한 도쿠리를 천천히 마시고 있자면 ‘불친절한’ 주인장한테 튀김 한 조각이나 생선 몇 점 서비스를 받기도 한다. 아무도 혼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 나를 불편해 하지 않는다. 이런 술집은 흔하지 않다. 그리고 혼자 마셔도 심심하지 않은 것은 어깨가 닿은 정도로 가까이서 술을 마시고 있는 손님들의 다양한 사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인장의 탁월한 선곡에 의해서 연주되는 음악에 있다. 락, 포크, 블루스 계열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이는 주인공의 취향대로, 요즘 시대에 온라인 음악 서비스가 아닌, 직접 CD에 녹음하여 플레이 해주는 음악들은 한 마디로 내 취향이다.  아는 노래가 나오면 취한 손심들이 떼창을 할 때도 있었다.

이런 곳을 사람들이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피크 시간대에 가면 줄을 서야 간신히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한 두잔 걸치고 빠져나가는 시간대에 찾아가거나 아예 새벽 시간에 들른다. 다찌 한 구석에서 사시미 한 접시에 맥주를 조용히 마시고 있는 사람을 보면 아는 체 하시라, 기분 좋은 날이라면 한 잔 살 수도 있을테니.

Kodak Retina IIa/Kodak Ultra Max 400

2012

※ 2015.7 추가

허전만 마음에 한 잔 하려고 오랜만에 들렀다가 헛걸음을 했다. 놀라서 찾아보니 2015/6/21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고 한다.

추억이 많았던 곳인데 아쉽다.

※ 2016.12 추가

사장님 아마도 제주도로 내려가신 모양이다. 그 전에도 제주 얘기를 자주하셨고 가게를 마련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인터넷 어딘가에서 제주로 내려갔다는 글을 봤다. 횟감이 좋은 곳이니 좋은 술집을 차리셨을 것 같다. 한 번 가보고 싶은데 연락처를 알 길이 없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