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기록에 약한 나는 이 술집에 처음 들렀을 때가 언제인지를 찾기 위해 블로그를 한참 뒤져야 했고 가까스로 그 때가 2009년 무렵이었음을 알았다. 2009라는 숫자는 나를 그 때의 기억속으로 이끌 뿐만 아니라 현재의 나를 몹시 고통스럽게 한다. 별다른 목표도 없이 무기력하게 보냈던 5년간의 세월을 생각하는 것은 몹시 괴롭다.

어쨌든 이 술집을 만난 것은 내가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작은 어항의 금붕어처럼 무기력하게 유영하던 한 때인 것만은 분명하다. 다람쥐 쳇바퀴의 한 지점, 그러니까 밥을 벌기 위해서 통근하는 길목에서, 한참 인테리어 중이던 작은 가게를 보게 되었다. 나의 눈길을 끈 것은 독특한 인테이어도, 화려한 네온사인 장식도 아니고 그 가공할 이름의 간판, ‘외상은 어림없지’ 였다.

이 무렵 나는 혼자 술 마시는 날이 많았다. 4층 짜리 낡은 빌라의 꼭대기층에 있던 작은 방을 유배지 삼아서 혼자 술을 마셨다. 전남 강진의 유배지에서 다산은 여유당 전서의 대부분을 마련했다지만, 나는 1 톤쯤의 알루미늄 재활용 캔을 배출했을 뿐이었다. 月下獨酌의 무한반복에 지칠 무렵, 나는 혼자 술을 마시고 있으면 되도 않는 말로 술이나 더 팔아보려는 작부가 나오는 음침한 술집이나, 머리에 아무것도 든 것이 없으면서 젊음 자체를 너무 과신하면서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천박한 아가씨가 나오는 ‘빠’ 같은 곳 말고, 적당히 외롭게 하지만 완전히 혼자는 아닐 수 있는 그런 술집이 필요했고 저 간판을 본 순간, 데자뷰 처럼 그 안에 앚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 내 모습을 본 것도 같다.

모르는 것을 보면 자존심이 상하는 나는 인터넷을 뒤져서 간판의 글씨가 저 멀리 콩고의 한 작가가 쓴 소설의 제목이라는 것을 알았고, 책을 구입하여 읽기까지 했으며, 이 술집이야 말로 내가 찾던 술집이라는 것을 운명처럼 알아챘다. 책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깨진 술잔’이라는 술주정뱅이가 ‘외상은 어림없지’라는 허름한 술집에 드나들면서 그곳을 오가는 인간군상의 모습한 스케치한 것인데, 내가 ‘깨진 술잔’ 이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역시 처음 이 술집에 들어가던 날도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가게 안에는 주인 부부 - 후일 형님, 형수님으로 호칭이 바뀌었지만 - 와 훨친한 키의 남자 알바 Y가 일하고 있었다. 어색하게 걸어 들어 갔던 것 같고, 4인용 테이블 한 귀퉁이에 역시 어색하게 걸터 앉았던 것 같고, 가져다준 메뉴판을 잠시 보다가 아마도 호가든 한 병을 소심하게 주문했던 것 같다. 그리고 천천히 가게 안을 둘러보았는데, 조악하지만 나름대로 키치적인 일관성을 풍기는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어두운 조명이 좋았다. 두세번 방문 끝에 주인과 말을 트고, 그가 신문 기자를 때려치우고 몇가지 사업을 전전하다가 이 술집을 내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내가 이 술집의 단골이 된데에는 Y의 역할이 컸다. 그는 180을 훌쩍 넘기는 큰 키에 가는 팔다리를 지녔고 작은 얼굴에 쌍꺼플이 없는 순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연기를 공부한다고 했다. 술집의 음악을 이 친구가 선곡했는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폭넓게 틀어주었고 내게는 대체로 생소한 음악들이었지만 공교롭게도 그것이 나의 취향과 부합해서 듣기에 좋았다. 내가 김광석이나 유재하, 이소라, Bob Marley, TOTO 등의 노래를 신청하면 신기하게도 이 친구는 적절한 라이브 곡을 잘도 찾아내서 들려주곤 했다. 그리고 그 곡을 진정 좋아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어떤 지점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다. 나중에는 내가 술집에 들어서면 알아서 조명을 조금 더 낮추고 내가 늘 듣던 음악을 틀어주곤 했다. 겨울이었던 것 같은데, 이 친구의 마감을 기다렸다가 근처 참치횟집으로 이동해서 같이 술잔을 기울였던 생각이 난다.

‘외상은 어림없지’의 치킨은 특별하다. 보기에도 흉악하게 생긴 큰 닭을 초벌로 한번 튀겨놓았다가 주문하면 다시 한번 튀겨서 주는 시중의 유명한 치킨집들과는 달리, 여기서는 작은 닭을 쓰고 주문하면 즉시 재료를 버무려서 튀겨준다. 그래서 육즙이 풍부하고 질기지 않고 부드럽다. 그리고 독특한 여러가지 향신료를 쓰는데, 닭을 숙성할 때부터 향신료에 담가 누린내를 제거하고 튀김옷에도 향신료가 들어가기 때문에 색다른 풍미가 있다. 같은 향신료로 버무린 감자튀김도 맛이 좋다.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 연신내, 2012.1

PENTAX MX / SMC K24mm / FOMAPEN CLASSIC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