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카메라를 꺼내들고 골목길을 걸었다. 이태원 일대는 오래된 골목이 많아서 자주 찾는 곳이다.

오늘 그의 유일한 식사였을 것 같은 짜장면 한 그릇이 깨끗이 비워진 채 놓여있다. 

“이태원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조선시대 효종(1619~1659)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효종 때 배밭이 많은 동네라는 까닭으로 배나무 이(梨)가 붙은 이태원(梨泰院)으로 불렸다고 전해 내려온다.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이곳에 귀화해 살았다는 뜻으로 ‘이타인(異他人)’이 어원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일본인, 왜란 중 성폭행을 당한 여성과 그들이 낳은 아이들이 모여 살던 동네여서 다를 이(異), 태반 태(胎)자를 써서 이태원(異胎圓)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상은 서울신문 송한수 기자의 기사에서 인용했다. 굳이 유래를 들지 않더라도 골목을 거닐어 보면 이곳이 복잡한 내력을 가진 곳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된다. 이태원은 호텔과 만국기와 만신이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영어로 씌여진 구인 게시물이 이국적인 냄새를 물씬 풍기지만, 골목의 모습은 오히려 가장 익숙한 우리네 옛 골목의 모습이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조그만 방들에 따뜻한 온기를 공급하는 것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차가운 금속 파이프다. 사람들은 격리되어 있지만 하나로 묶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서로를 온전히 믿지 못한다. 사실 그런 날이 오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사람들을 묶어주는 것은 가스공급관만이 아니다. 이 검은색 케이블들은 그렇게 격리된 사람들을 네트워크라는 틀로 묶어준다. 사람들은 격리되어 있고 간섭받길 싫어하지만, 어딘가 속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한다. 

아마도 이태원의 가장 상징적인 풍경은 이슬람 사원의 모습일 것이다. 골목을 걷다 고개를 돌리면 나타나는 풍경.

이태원, 2013.2.17

Pentax K100DS / AUTO mamiya sekor sx 35mm F2.8

추신. 2013.3.18

만신인줄 알았던 저 붉은 색 깃발은 용산 일대 재개발에 대한 저항의 표시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