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청(朱自淸) 선생의 아버지의 뒷모습(背影)이란 수필을 읽다가 문득 그 때가 생각나서 적는다.

내가 태어는 곳은 아산군 영인면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흔티라고 불린 것을 보면 고개마루인 모양이다. 갓난 아기 때 그곳을 떠나왔으므로 별다른 기억은 없는데 꼭 하나 선명한 사진처럼 남아 있는 장면이 있다. 햇살 좋던 어느 해 여름이었다. 아버지가 느닷없이 낚시 도구들을 장만하셨다. 고향집 근처에 있는 저수지로 낚시를 가는데  하루 두어번 다니는 버스를 타고 먼지 풀풀나는 시골길을 달리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어쩐지 좀 흥분하셨던 것 같다. 초록의 벼들이 바람에 출렁댔고 그 사이로 난  논둑길을  아버지는 커다란 낚시가방을 맨채  저만치 앞서 걸어 가셨다. 나는 뒤쳐질세라 종종걸음으로 당신 뒤를 따라갔다.  아버지의 등은 넓었고 팔뚝은 억쎘으며 걸음걸이는 힘찼다. 순간 아버지 앞으로 뱀 한마리가 나타났다. 나는 너무 놀래서 빽 소리를 질렀는데 당신은 못들으셨는지 그냥 그 뱀을 쓱 밟고 지나가셨다. 비명횡사한 뱀이 논둑 아래서 굴러떨어졌다. 파란색 하늘에 힌구름이 조금 섞여 있었던 것 같다.

사실 그 때 물고기를 얼마나 잡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그것이 내 처녀 출조였고 내가 낚시를 좋아하게 된 시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