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을 여행하면서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이 ‘속도와 밀도’의 차이다. 도시에서는 무엇이든 빠르고 무엇이든 넘쳐난다. 반면에 시골에선 느리고 듬성듬성하다. 빽빽한 빌딩 숲과 빠른 차들은 도시 풍경이고 한가롭게 떨어져 있는 농가와 느린 차들이 시골 풍경이다.

  시골에서 버스를 타고 여행해보면 ‘속도와 밀도’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버스는 대체로  제 시간에 오지 않는다. 텅빈 버스 정류소는 참 막막하다. 빨간 벽돌에 붙어 있는 흰색 이정표만 하릴 없이 지켜보다, 싫증나면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 들판을 구경한다. 푸른 하늘에 구름 구경도 시들해질 쯤에야 느릿느릿 버스가 들어 온다. 손 흔들거나 뛰지 않아도 버스는 내 앞에 선다.

  흥덕가는 버스가 들어왔다. 고창을 가야 하는데 혹시나 하고 물어본다.

  “아저씨 이 버스 고창가요?”

  “고창은 안가는데 고창 어디 가려고?”

  “고창 터미널요.”

  “거긴 왜 갈라고?”

  “서울 가는 버스 타려구요.”

  “그럼 이거 타. 흥덕에서 서울가는 버스 많어”

  버스를 타니 할아버지들이 한 마디씩 거든다. 서울 가는 버스가 고창에서 흥덕 거쳐가는 걸 그제야 알았다 . 버스는 꾸불꾸불한 길을 느긋하게 달린다. 버스가 꽉차는 일은 좀체로 없다. 몇 개의 정거장을 지나자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한참을 걸어와서 버스에 오른다. 기사랑 아는체를 하고 쌈짓돈을 찾아 차 삯을 내고 자리에 앚을 때까지 버스는 서 있다. 대도시에서 퇴역한 듯한 버스에 에어컨은 설치되어 있지 않지만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공짜로 불어온다. 여기 저기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지만 시끄럽지가 않다. 기사가 깜박 잠든 학생을 깨워 정류소에 내려준다. 시골 버스에서 사람들은 적당히 떨어져 있지만 쉽게 소통한다.

  서울의 버스는 어떤가. 기사에게 뭐라도 물어보면 손사래를 치며 짜증을 내거나 핀잔을 주기 일쑤다. 뒤에 있는 승객들은 물어보고 있는 틈을 비집고 차에 오르기 바쁘다. 정류소를 1초라도 지나서 벨을 누르면 내릴 수가 없다. 그래서 아이를 업고 양손을 짐을 들었더라도 미리 출입문 앞에 서 있어야 한다. 버스는 늘 만원이다. 카드 단말기가 삑삑 소리를 연발하면서 버스 회사의 잔고는 늘어나지만 손님들은 짐짝 취급을 받는다. MP3, PMP, 핸드폰이 넘쳐나서 귀가 쉴 틈이 없다. 나도 할 수 없이 MP3를 귀에 꽂은채 소음으로 소음을 가린다. 사람들은 밀착해 있지만 소통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비단 버스 뿐만이 아니라 모든 방면에서 도시와 시골의 ‘속도와 밀도’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시골의 젊은이들은 ‘속도와 밀도’를 찾아 찾아 고향을 떠난다. 도시는 점점 부유해지고 시골은 점점 가난해진다. 우리의 고향이 퇴락해가는 시골 버스를 닮아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2008.9.20-21 부안, 고창 여행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