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은 원래 늪지대였다고 한다. 그 끈적끈적한 땅을 메꾸어 땀 냄새 나는 공장들을 세웠다. 60,70 년대에는 수도권의 대표적인 공업기반이 될 만큼 번성했던 문래동. 하지만 2차 산업의 급격한 쇠퇴와 함께 공장들이 수도권 외각으로 밀려나면서 문래동도 쇠퇴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텅빈 공장들이 문래동을 지키던 2000년대, 값싼 임대료와 넓은 작업 공간에 매력을 느낀 젊은 예술가들이 하나 둘씩 문래동으로 모여들었고 그것이 지금의 예술촌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것은 인터넷에서 찾아본 문래동 예술촌의 유래이지만 내가 이곳을 찾게 된 계기는 엉뚱하다. 단골 술집에서 술을 한 잔 하다가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팜플렛을 보게 되었는데 문래동에서 어떤 전시 같은 것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장 형님이 문래동에 그러한 곳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고 골목을 좋아하는 나는, 햇살 좋은 날을 골라서 카메라를 챙겨 나가게 된 것이다.

문래동에 도착했을 때 조금 놀랐다. 아파트 숲속에 이런 거무튀튀한 공장들이 버티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다음으로는 실망했다. 다양한 작업실과 전시공간을 기대했던 나는 몇 안되는 작업실 몇 곳과 색다른 벽화를 몇 점 목격했을 뿐이었다. 성급한 결론일지도 모르지만 서울시 도시정책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할까. 서울 한 복판이라는 접근성과 넓고 독특한 작업공간을 잘 살려서 아이디어를 낸다면 훌륭한 예술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에서 예산을 내고 작업실과 예술 활동을 지원해주며 갤러리와 카페와 술집을 유치해서 사람들이 모여들면 좋을텐데. 몇 해전 피맛골을 때려부수던 포크레인이 생각나서 디자인 서울이라는 삽질의 끝이 이런 것이 아닐까 씁쓸한 생각이 든다.

복길이네 식당은 쉬는 날인지 사람들이 안보였다.  닭도리탕 맛있을 것 같은데.  

 

C.B.S 가 무슨 뜻일까 잠시 생각했다. 혹시 씨벌스키?

여기 특징은 철문에 번호가 붙어 있다는 것이다.  닫을 때 헷갈리지 않게 하려고 그랬을까?  

여기도 번호가 붙어있다.

   

이날도 햇살이 좋았다.

Pentax Me Super SE/SMC K24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