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독 도서관="" 앞="" 회화나무=""> 어린적에는 꿈을 반복해서 꾸곤 했다. 그래서 꿈 속의 나는 마치 같은 영화를 여러번 본 아이처럼 앞 일을 미리 알 수 있었다. 자주 반복되던 꿈 중의 하나는 공사중인 건물 옥상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꿈이었다. 간혹 끝없이 높은 계단 꼭대기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떨어지다가는 꼭 중간에서 나뭇가지나 철근 가닥을 잡고 위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잠들 무렵 허방다리 밟는 기분이 들고 가슴이 철렁하면서 잠에서 깨기 일쑤였으나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나뭇가지나 잡고 올라가겠지' 라고 여유를 부렸다. 꿈 속이지만 참 우습기도 했다. 떨어지는 꿈하고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꿈이 있었는데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이었다. 수원 꼭대기에 있던 우리집에서 한번 뛰어오르면 동네가 다 보일 정도로 높이 날았다. 그리곤 천천히 내려오는데 땅에 닿을 무렵이 되면 발을 힘차게 돋아서 다시 뛰어오르곤 했다. 한참을 그렇게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결국에는 애들하고 공차고 놀던 동네 운동장에 내리면 끝나는 그런 꿈이었다. 어른들은 둘다 키크는 꿈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빼놓을 수 없는 꿈 이야기가 있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그 꿈은 어느 논둑 길을 혼자 걸어가는 꿈이다. 그 마을이 어디인지 꿈에서도 꿈 밖에서도 모르겠지만 아주 익숙한 곳이었다. 나는 그 길을 걷다가 문득 "아 예전에도 이렇게 걸었었지'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가슴이 뻐근하게 아파오고 어떤 강렬한 감정에 휩싸는 것이었다. 그것은 근원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리움이었다. 그러면서 꿈에서 깨는데 그 순간에는 그 그리움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서서히 잠에서 깨면서 기억도 사라져갔다. 마치 잡으려하면 스러지는 새벽이슬처럼.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그리움의 근원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런 고통스런 체험은 재발한다. 낮잠을 자다가도 일어나도 걸어가다 가도 친구와 영화를 보다가도 일어난다. 그 짧은 순간만은 알것 같다가도 지나면 금새 잊어버린다. MIB 라는 놈들이 실재(實在)할지도 모른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도 해봤다. 한번은 낮잠에서 깰 무렵 노트에 필기를 한 적이 있다. 그 그리움의 정체를 잊기전에 적어두려고 황급하게 노트필기를 했다. 그런데 지금 그 노트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노트 자체도 없었는지 모르겠다. 모른 것이 꿈에서 이루어졌을지도 혹은 MIB가 가져갔을지도. 혹자는 데자뷰 현상이라고도 한다. 나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데자뷰 현상으로 한정 짓기에는 뭔가 미흡한 기분이 든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시각(視覺)에 크게 의존한다는 사실이다. 고궁이나 유적지에 가면 자주 일어난다. 일전에 코란도님 안내로 '가례헌'이라는 우리 서도소리 공연을 하는 집에 간 적이 있다. 투박한 밥을 먹고 옆방에 앉아서 이쁜 처자가 따라주는 차를 마시는데 머리가 띵하면서 가슴이 조여왔다. 또 그 알 수없는 그리움이 엄습했다. 먼 옛날에 꼭 그자리에서 그렇게 차를 마셨다. 언제인가는 친구랑 심야영화를 보는데 아마도 공룡이 나오는 영화였던 것 같다. 태고적 광활한 평원이 노을빛에 물드는 장면에서 그만 눈물이 나고 말았다. 옆의 친구한테 '바로 저것이야.' 말하고는 뭔가 더 설명하려다가 그만 둔 적이 있다. 여행을 다니면서 사진을 가끔 찍는데 길이나 혼자 서 있는 나무 그리고 노을 등을 볼 때 그런 일이 자주 생긴다. 위의 나무 사진도 마찬가지다. 혹시 전생이라는 것이 있어 내가 나무가 아니었나 이런 멍청한 생각도 한다. 데자뷰 현상이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볼때 뇌에서 일어나는 신경화학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 연구에 따르면 인위적으로 데자뷰 현상을 체험하게 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왠지 믿고 싶지가 않다. 어릴 적 느꼈던 그 아스라한 그리움의 근원을 찾아서 나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고 여전히 찾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비밀을 꼭 알아낼 것이다. 정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