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 입문기 #1

아마 대충 5년전 쯤일 것 같습니다. 몇년도에 뭐했다는 식의 기억을 저장할 메모리가 저의 뇌에는 없는지라 정확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어떤 일이건 몇년만 지나면 그것이 작년 일인지 십년전 일인지도 헷갈리는 저질 뇌의 소유자 입니다. 누워서 침뱉기는 끝이 없을 것이므로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어쨌든, 인터넷을 뒤져서 저가의 일제 릴과 싼 티나 보이는 투피스 대를 마련하고 루어 낚시를 시작했습니다. 될대로 되라는 식이었죠. 당시 저는 백수였고 백수의 가장 낭만적인 이미지란 물안개 핀 고요한 강에 배 한척 띄워놓고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었기에 백수 노릇 제대로 해보잔 심산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무슨 일에건 천성이 드러나는 법인데, 굳이 루어낚시를 선택한 이유는 장비가 단촐하고 생미끼를 마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천성이 게으른 저에게 딱 맞는 낚시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의 낚시 입문은 국민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질 뇌이므로 대략 십여년의 오차를 감안하십시요. 아버지가 어느날 저를 데리고 시내 낚시점에 가서는 낚시세트 일체를 구입하셨습니다. 그날 아버지는 조금 상기되셨고 낚시 장비를 하나 둘 고르면서 적잖이 흥분하시는 것도 같았습니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셨는데 삼남매를 키우고 할머니를 봉양하시면서 거의 삼교대 근무를 하셨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당신 자신만을 위해서 돈과 시간을 쓰게 된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좋으셨나 봅니다.

어쨌든 그 후로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낚시를 배웠습니다. 첫 출조지는 아버지의 고향이자 저의 고향집 근처 저수지였습니다. 충남 아산군 영인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학창시절에 가끔 낚시를 하셨다며 저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아마도 추억을 더듬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 후로는 집에서 가까운 수원 근교의 저수지를 다녔습니다.

무엇보다 밤낚시의 추억이 많습니다. 사위의 불빛이 하나둘씩 꺼지고 찌 위에 매달아둔 형광색 캐미라이트의 불빛을 가슴 졸이며 바라보면 마음이 고요해 지는 것이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늦은 밤 “촤르르르” 방울이 울리면 아버지보다 제가 먼저 물레방아통을 - 연날릴때 쓰는 얼레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여기에 줄을 감고 그 끝에 추와 바늘이 달려있습니다 - 잽싸게 낚아채서 감았습니다. 아버지의 특제 감자채비는 효과가 좋아서 꽝치는 법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일명 스이꼬미란 채비였는데 아버지는 이 채비를 위한 몇가지 도구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감자를 적당히 삶는 것이 중요하다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 맛있는 감자를 먹다가 아차싶어 이리저리 째며 저항하는 잉어를 끌어올리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출출할 때 끓여먹던 삼양라면 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과연 면귀신)

아버지는 한참전에 낚시를 접으셨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어머니 따라 절도 다니고 법명까지 받았으니 부처님 제자로서 낚시는 온당치 않다는 것이었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저 흥미가 떨어지신 것 같습니다. 대신 요즘엔 거의 매일 산에 다니십니다.

이야기가 한참 샜는데, 어쨌든 대낚시와 방울낚시로 강태공 세계에 입문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릴 적에도 붕어낚시는 참 번거롭게 생각되었습니다. 가방은 한 짐이지 떡밥 뭉쳐야지 지렁이 꿰어야지  틈틈이 미끼 갈아야지. 다시 낚시 시작하는 마당에 귀찮은 일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붕어나 잉어가 싫었습니다. 반론이 많겠지만 맛도 별로 없고 저수지 특유의 물비린내도 싫었고 가만히 않아서 도 닦기도 싫었습니다.

루어낚시에 매력을 느꼈던 것은 단촐한 준비물이 가장 큰 몫을 했지만 깨끗한 강에 발을 담그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낚시대를 멋지게 휘두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브레드피트가 팽팽할 때 나왔던 “흐르는 강물처럼” 이란 영화도 한 몫했습니다. 물론 브레드피트는 플라이 낚시를 했고 제가 그 놈보다는 좀 잘생겼습니다만. (퍽)

그렇게 장비를 구입하고 조급한 성미에 바로 한강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캐스팅 - 가짜미끼를 낚시줄에 매달아 목표한 지점에 투척하는 것 - 방법을 몰랐던 것은 당연하고 릴의 기초적인 사용법도 몰랐습니다. 낚시 TV에서 본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한강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캐스팅을 했습니다. 멋진 예각을 그리며 시원스레 날아가는 루어를 - 가짜 미끼 상상했습니다만 역풍을 맞은 루어는 엉뚱한 곳에 떨어졌고 릴에서 맘대로 풀려나온 줄은 떡진 머리보다 심하게 엉켜버렸습니다. 브래드피트가 옆에서 비웃고 있었고 감겨있던 줄의 거의 반 정도를 잘라내야 했습니다.

실로 무모한 시도였습니다. 보다못한 장박꾼 할아버지 한 분이 - 한강에 나가보면 주로 장어나 잉어 누치 등을 잡으러 나오시는 할아버지들이 많습니다 - 다가오시더만 캐스팅 하는 법을 알려주셨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할아버지는 루어낚시대를 처음 써보신 것이고 알려주신 방법은 원투대 - 연안에서 멀리 미끼를 투척할 수 있도록 긴 릴낚시대 - 던지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까스로 루어를 물에 담글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물고기가 바보가 아닌 이상 물릴 리가 없죠. 이렇게 꽝조사의 전설은 시작되었습니다.

(계속)